
시사투데이 김균희 기자] 1998년 2월 판문점 인근 비무장지대 경비초소에서 의문의 총상을 입고 사망한 고 김훈중위(당시 25세)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하라는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가 내려졌다. 고 김훈중위는 1998년 2월 24일 정오 무렵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고 사망상태로 발견됐지만, 군의 최초 현장감식이 있기 두 시간 전인 당일 14시경 이미 ‘자살’ 보고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성급한 자살예단으로 인한 부실 초동수사로 지금까지 논란이 돼온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이다.
이후, 유가족은 “군이 타살단서가 될 수도 있는 사건 현장의 시설(크레모아 스위치 박스) 훼손과 고인의 손목시계 파손을 간과했고, 유류품의 위치 실측과 현장 사진 촬영 등의 소홀, 사건 현장과 사체의 사고당시 상태 미보존했다”며 자살을 인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러한 부실 초동수사 논란과 관련하여 2007년 6월 대법원에서 “조사활동 내지 수사의 기본원칙조차 지켜지지 않은 채 행해진 것으로서 명백한 하자가 있어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었다.
유족들은 지난해 9월 권익위에 사건 재조사후 순직인정을 받게 해달라는 내용의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권익위는 지난 3월 ○○특전여단 사격장에서 국방부 조사본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당시 특정 상황을 그대로 재연해 총기 격발실험을 실시했다. 총기격발실험에는 김중위가 왼손으로 권총 총열을 지지한 채 오른손으로 자신의 머리에 격발했다는 기존 주장에 따라 이를 검증하고자 10명이 동일한 자세로 참가했다.
하지만 당시 김중위는 왼쪽 손바닥에서만 화약이 검출됐는데 반해, 같은 자세로 실험에 응한 실험자 10명은 전부 김중위와 달리 왼쪽 손등에서 화약이 검출됐고, 9명은 오른쪽 손등에서도 화약이 검출됐다. 이는 김중위가 스스로 격발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권익위 조사과정 중 과거 국방부의 수사 시 확인된 사항이 재차 부각되기도 했는데, 그 중에는 김중위의 총구가 머리에 밀착돼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약 1~3Cm 떨어진 상태였다는 것과 김중위의 오른손에서 발견된 혈흔이 격발 당시 흔적이 아니라, 사망 후 생긴(코에서 떨어진) 혈흔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은 김중위의 사망이 자살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이것이 곧 타살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권익위는 김중위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과 같이 “수사 초기 김중위가 ‘자살’한 것이라는 예단이 부대 내·외부에 지배적이었고, 그러한 정황이 수사기관의 수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며, 그 결과 현재로서는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규명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고 최종 판단했다.
권익위는 징병제 국가에서 군 복무 중인 자의 생명권이 침해됐을 때, 국가가 그 침해의 원인을 밝힘과 동시에 이에 대한 적절한 위로와 보상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봤다. 또한 일반인의 접근이 통제된 군 영내에서 사망한 경우까지 공무와 사망간 인과관계 입증책임을 유족에게 지우는 것은 헌법상 국민의 생명·신체에 대한 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이고, 특히 부적절한 초동수사로 인해 결국 사망원인 규명이 불가능하게 된 것은 적법절차를 위반한 결과라는 점을 고려할 때, 사망사고 사안별로 공무관련성을 판단해 순직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국민의 법감정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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