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투데이 전하라 기자]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21일 제48회 과학의 날을 맞아 4월 ‘이달의 기록’ 주제를 <과학기술 진흥,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지다>로 정하고 1960~1990년대 주요 과학기술기관의 설립과 활동 관련 기록물을 421일부터 홈페이지(www.archives.go.kr)를 통해 서비스한다.
이번에 소개되는 기록물은 동영상 9건, 사진 18건, 문서 7건 등 총 34건으로, 주요 과학기술기관의 설립과정과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1966년 2월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기술 분야 종합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現 한국과학기술연구원)가 발족됐다.
1965년 5월 박정희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은 공동성명을 통해 한국의 공업기술 및 응용과학 연구소 설립 지원을 합의했고 그 해 7월 존슨 대통령의 과학기술고문인 호닉 박사가 내한하면서 연구소 설립이 가시화 됐다.
KIST는 홍릉임업시험장 구내를 연구소 부지로 선정하고 1966년 10월 기공식을 열었다. 이후 1969년 10월 연구소 건물을 준공하고 본격적인 연구 활동을 수행했고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요람으로 자리 잡았다.
시설 공사와 더불어 연구를 수행할 인력 유치활동도 병행됐다. KIST는 우수한 연구인력 확보를 위해 해외 한인과학자 유치에 힘썼고 18명이 1차로 연구소와 계약을 맺었다. 이들은 높은 급여와 주택, 자녀의 취학 편의 제공 등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특히 200~400달러에 달한 월급의 경우 국립대학 교수의 3배에 가까웠고 대통령보다 월급이 많은 사람도 있었다.
KIST의 발족 이후 과학기술처, 대덕연구단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이 설치돼 과학기술 진흥의 토대를 마련하고 본격적인 연구와 인재양성에 매진했다. 정부는 1967년 1월 ‘과학기술진흥법’을 제정하고 과학기술 전담 행정기관인 과학기술처를 같은 해 21일 설치했다.
또한 과학의 대중화에 힘쓰기 위해 1968년에 과학기술처 발족일인 4월 21일을 ‘과학의 날’로 제정하고 매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1973년 대덕연구단지 건설계획이 확정돼 단지 개발이 추진됐다. 이후 1978년 한국표준연구소를 시작으로 럭키중앙연구소(1979), 한국해사기술연구소(1989) 등 민간과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1992년 말에는 33개 기관이 연구단지 입주를 마침에 따라 대덕연구단지는 기념식을 열고 준공을 선포했다. 1981년 1월 KIST와 과학기술 전문인력 양성기관인 한국과학원(KAIS)을 통합해 출범한 KAIST는 우리나라의 핵심적인 연구·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연구와 교육이라는 서로 다른 기관의 통합 운영에 따른 비효율성이 제기되자 1989년 KAIST와 KIST로 재분리 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행자부 국가기록원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진흥에 관한 기록을 통해 산업과 경제 발전의 근간이 되는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저작권자ⓒ 시사투데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