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8년 넘게 걸어온 길-
성우라는 직업은 어떠한 것이고 그것이 갖고 있는 매력은 무엇일까? 항상 브라운관 뒤에서 목소리만으로 시청자들을 만나지만 호소력 짙게 우리의 기억에 남는 사람이, 아니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성우다. 67년에 데뷔한 이래 38년이 넘게 우리 곁에서 목소리 하나로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있다. 편안하면서도 삶의 농이 짙게 베어나는 목소리로 지금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성우 박일 씨를 만났다. 현재 그는 성우 인력 양성을 위한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그 곳에서 성우라는 직업에 대한 열정과 후배들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찬 현역 성우 박일 씨와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누었다.
인터뷰 - 기자와 성우의 만남
학원으로 들어서자 작은 녹음실과 함께 대본 읽기 등 더빙 연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소박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원장실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기자의 질문보다 훨씬 더 성심 성의껏 많은 답변을 해서 준비해 간 질문이 부족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Q : 어떻게 성우의 길을 걷게 됐는지?
박 일 : 대학 다닐 때 성우를 지원하는 친구를 따라 67년에 같이 지원해서 TBC라는 방송국에 갔다가 당시 박용기 드라마 PD에 의해 스카우트되었다. 그 때에는 성우로 선발되었다기보다는 PD가 드라마에 출연시키고자 해서 성우가 된 것이라 성우로서의 역량이 너무 부족했었다. 그만두라는 얘기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초기엔 단역이나 소음 역할만 하다가 실력이 없어서 그만두게 되었다. 그 후에 70년대에 MBC에 입사했다. 그 당시 성우도 시작 단계였고, 나 역시 새로운 시작이라는 각오로 정말 열심히 했다. 경력도 있었고 합격도 했지만 지난 것들은 모두 잊고 온갖 경험을 다 하며 오기로 뭐든 했다. 그래서 1년만에 주인공 역을 따냈고, 그 때가 가장 혹독한 시련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성우는 계속해서 노력해야 하며 나 역시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 소리가 다듬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소리가 평범하지만 어떠한 역할을 맡아도 잘 어울릴 수 있는 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Q : 지금까지 하신 작품이나 기억에 남는 역할은?
박 일 : 외화 더빙 중에 예전에 했던 작품은 영화 ‘햄릿’의 햄릿 역(로렌스 올리비에)과 ‘노틀담의 꼽추’, ‘히트’(알파치노) 등 지금까지 5~6만 편 등에 참여했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역을 맡았던 것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리고 조금 오래 전에 했던 프로그램인데, ‘전설 따라 삼천리’에서 산신령 역도 많이 했다. 모든 작품과 역할에서 열심히 했고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특별하게 기억이 남는 것은 없다. 성우라는 직업뿐만 아니라 연극과 영화 등에도 출연했었고 쇼프로 진행, 밤무대 가수도 겸한 적이 있었다. 목소리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Q :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박 일 : 지금은 외화시리즈 ‘과학수사대‘의 그리섬 반장 목소리를 더빙하고 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활동을 하고 있고, 작년 여름에 성우 학원(박일 STA)을 개원했다. 현재는 프리랜서로 성우 활동을 하면서 젊은이들과 현장에서 호흡하고 싶어서 학원을 시작했고, 나의 노하우나 직업에 관한 열정을 전수하고 싶다. 몇 년 전에는 사업을 시작하여 성공하기도 했지만 역시 다른 어떤 것보다도 성우라는 직업을 통해 즐거움과 인생의 맛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성우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직접 강의하고 있다.
Q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박 일 : 계속적으로 후배 양성에 힘쓸 생각이다. 성우를 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혼신의 힘을 다해 가르치고 싶은 것이 꿈이다. 또 스피치 트레이닝을 통해 자신감을 심어 줄 수도 있고 그럴 때 보람을 느낀다. 성우는 방송의 기본 역량을 갖추어야 하는데, 정확한 발음과 전달력, 호소력이 중요하다. 그것을 미리 익혀 방송에서 제대로 된 성우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이 되려는 것이다.
Q : 성우가 되려는 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박 일 : 보통 성우가 되는 길은 방송사의 공채에 합격하여 입문하는 것이다. 이미 공채에 지원하는 데 대한 정보는 많이 있지만 그 준비과정은 만만치 않다. 스터디나 동호회를 통해 준비하거나 전문 성우 아카데미를 통해 기본기를 익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성우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기술적인 면(더빙 등)도 배울 필요가 있다. 이제는 전문적인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Q : 마지막으로 성우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말은?
박 일 : 성우는 연예인이 아니라 방송인이다. 그리고 성우라는 직업이 가지는 매력은 어떠한 구체적인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좋은 점이라 하면 자신이 부단히 노력한다면 생명력을 갖고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의 경우 성우를 오랫동안 한 노련한 성우가 더빙을 하는 반면에 한국에서는 그와 반대되는 상황이라 이 부분이 조금 아쉽다. 성우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야가 만화 더빙 쪽이기 때문이기 만화에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 기업 홍보나 제품 홍보, 영화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스타성이나 지명도가 낮아 본인 스스로가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눈, 귀, 입을 통해 그리고 그 모든 감각을 활용하여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과 끼를 발휘하는 것이 성우라고 생각한다. 화술이나 화법 등 대인관계에서 말이 갖고 있는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며 그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도 성우의 역할이다. 성우는 한 시대에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열정과 애정으로 가득 찬
길지 않은 인터뷰 시간이었지만 밀도 있는 대화를 통해 성우 박일 씨에 대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대화 내내 자신감 있는 말속에서 성우에 대한 열정과 후배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인터뷰 후에 수업이 있어서 잠깐 참여했는데,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성우 지망생들의 성우가 되고자 하는 의지로 수업 시간은 활기찼고, 에너지가 넘쳤다. 앞으로 박일 씨의 활발한 활동과 성우 양성에 대한 활동을 바라며, 더 오랫동안 라디오나 브라운관을 통해서 그의 편안하면서도 매력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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