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투데이 이한별 기자] 훈민정음 반포와 조선왕조실록 간행을 종이로 뒷받침했던 조선의 국가 제지기관 '조지서'(造紙署)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한다.
조지서 건립 추진위원회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청 다목적실에서 유찬종 종로구청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 유인촌 전 문화체육부장관, 김영명 예올 이사장, 노영혜 종이문화재단 이사장, 문화예술인과 한지 장인, 출판인, 학계 전문가, 지역주민 등 40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지서 건립 추진위원회 발대식'을 개최했다.
발대식은 경과보고와 추진단장 인사말, 축사·격려사, 축시 낭송, 결의문 채택 순으로 진행됐다.
김영종 추진단장(전 종로구청장)은 "조지서 건립은 개인의 영역이 아닌 국가 제지기관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여 종로구 차원의 공공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단순한 시설 건립을 넘어 종로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문화 공간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유찬종 종로구청장은 축사에서 "내년 주요사업으로 '조지서 기념관 건립'을 선정하여,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 예산을 편성 중에 있다"며 "앞으로 추진단, 한지 장인, 문화예술계, 지역주민 여러분과 뜻을 모아 조지서 기념관 건립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은 격려사에서 "한국의 닥나무 종이는 세계 최초의 인쇄물을 가능하게 한 핵심적인 물적 기반"이라며 "한국의 사계절 환경에서만 생산 가능한 닥나무 종이는 자연과학적 분석을 통해 그 독보적인 가치가 입증됐으며 세계 서지학계에서도 한국의 인쇄 문화가 지닌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조지서 복원은 단순한 건물 건립을 넘어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 우리 정신이 담긴 한지 기록물의 가치를 계승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한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수년간 많은 노력이 이어져 왔으며, 조지서 건립이 이러한 추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영명 예올재단 이사장 "24년간 전통 공예의 가치를 보존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조지서 복원 사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며 조지서의 역사와 우수한 한지의 가치가 미래 세대로 온전히 계승되기를 염원한다고 전했다.
이어 신달자 시인의 '저 잎사귀 위에 종이라고 쓰고 싶다'로 시작하는 자작시 '닥나무'와 '종이' 축시 낭송이 진행됐다.
1415년(태종 15년) 종로구 세검정 일대에 설치된 조지서(造紙所)는 국가에 필요한 종이의 생산과 품질 관리, 공급을 담당한 기관이다.
훈민정음의 창제·반포·보급을 뒷받침했고,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외교문서 등 국가 기록물과 수많은 고전 문헌의 간행·보존을 가능하게 한 조선 출판·기록문화의 물적 기반이었다.
그러나 1882년 폐지된 뒤 그 역사와 기능은 오랫동안 잊혔고, 옛터에는 작은 표지석만 남아 있다.
추진위는 이번 발대식을 계기로 조지서의 역사적 공간과 국가 제지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재조명하고, 전통 한지 제조기술의 보존·전승과 미래 가치 창출을 아우르는 복합문화공간 건립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옛 건축물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한지와 한글, 출판·기록문화를 교육·체험·연구·전시·산업으로 연결하는 창조적 문화 플랫폼을 지향한다.
추진위가 제시한 4대 핵심 방향은 ▲역사·문화 교육과 체험의 장 조성 ▲전통 제지기술의 전승과 장인 상생 ▲한지·한글 문화콘텐츠 산업의 거점 구축 ▲자연·역사·지역공동체가 어우러진 문화공간 조성이다.
우선 닥나무 재배와 채취, 원료 가공, 한지 뜨기, 활자 인쇄, 서책 제작, 기록 보존에 이르는 전 과정을 아우르는 역사·문화·과학 융합 교육·체험 공간을 조성한다.
맥이 약해지는 전통 한지 제조기술은 지장(紙匠)들과 협력해 보존·전승하고, 한지를 친환경 소재와 디자인, 건축, 미술 등 현대 산업과 연계해 활용 가능성을 넓힌다는 구상이다.
전통 한지를 활용한 고전 복간과 기록유산 보존, 한글 문화상품 개발, 전시, 연구, 국제 교류를 통해 지속 가능한 문화콘텐츠 생태계도 조성한다.
세검정과 홍제천 일대의 자연환경과 역사문화 자원을 연계해 시민을 위한 문화적 쉼터를 마련하고,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문화 거점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추진위는 지난 1월 노영혜 종이문화재단 이사장, 최현사 한지보존재단 이사장, 김형진 국민대 부총장, 형난옥 나녹 대표가 뜻을 모으며 첫걸음을 뗐다고 설명했다.
건립 부지는 한지를 말리던 '너럭바위'가 위치한 세검정 일대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 종로구 소유 구유지로 한옥 재활용 가건물이 있는 부지를 최적 후보지로 검토 중이다. 인근 서울시 부지에서는 시립종로청소년센터 건립이 진행 중이어서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특히 '문화 1번지' 종로를 이끄는 유찬종 종로구청장이 부지와 타당성 조사 예산을 확보해 본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
참석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종로구민 의견 수렴과 투명한 공개, 주민참여 ▲조지서 역사 공간 복원 ▲전통 한지 제조기술 보존·전승과 지장 상생 ▲교육·체험과 현대 디자인·친환경·출판 산업이 어우러진 창조적 문화 플랫폼 도약 ▲세검정·홍제천 일대 자연환경과 역사자원 보존 ▲정부·지방자치단체·문화예술계와의 연대를 통한 한지 세계화를 결의했다.
이한별 기자 sisatoday0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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