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투데이 이윤지 기자] 글뤽 아우프(Gluck auf·행운을 갖고 살아서 올라오라)’ 독일의 1,300m 지하 갱도에 들어갈 때마다 한국에서 온 광부들이 나눴던 위로이자 인사다. 칠흑 같은 어둠속을 헤드랜턴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 36도가 넘는 지열로 장화에 고이는 땀을 수차례 비워내야 고단한 하루가 끝났다. 파독광부들이 쇠동발을 잡고 울 때 대한민국의 딸들은 간호사로 일하며 온갖 궂은일을 해냈다.
청춘의 땀과 눈물에 젖은 돈은 고스란히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쓰였다. 1962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87달러로 세계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는 1963년부터 1977년까지 약 2만여 명의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이 보내온 외화를 종잣돈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이처럼 이역만리 타지에서 목숨과 맞바꾼 파독근로자들의 헌신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밑거름이 되었지만 노고·희생·공로에 걸맞은 예우나 지원은 전무한 상태다. 2020년 6월 ‘파독광부간호사법’이 제정됐으나 기념사업 관련 내용만 들어있고, 파독 근로자에 대한 생활비·의료비 등 지원 내용은 모두 삭제됐다. 말 그대로 알맹이는 쏙 빠진 허울뿐인 법이다.
(사)한국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연합회(이하 파독연합회,www.kdg.or.kr) 김춘동 회장은 “다수가 80대에 접어든 파독광부들은 폐에 분진이 쌓여 생기는 진폐증 등 호흡기 질환으로 병원치료가 일상”이라며 “국가 간 협정에 따라 파견됐음에도 한국이 아닌 독일 광산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로 산재보험법에 따라 의료지원을 받을 수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파독연합회원 1,000여 명 가운데 상당수가 생계에 어려움을 겪거나 광부 생활로 얻은 진폐증, 규폐증, 청각장애 등으로 고통 받고 있다.
이에 파독연합회는 지난 7월31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파독광부와 간호사 등의 공로를 평가하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 세미나를 열었다. 50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한 목소리로 ‘파독 근로자들의 사회서비스 지원 정보 체계 구축, 의료비 일부 지원, 생계지원금 및 주거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김 회장은 “라인강의 기적을 한강의 기적으로 초석을 이룬 파독의 전사들에게, 파독인의 업적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기념관, 기념탑 하나 제대로 없다. 참으로 부끄럽고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길 없다”고 속내를 밝혔다.
이처럼 ‘파독근로자의 숙원해결’에 사활을 걸어온 김춘동 회장은 1977년 독일에 갔던 마지막 파독 광부 세대다. 2022년 한국파독연합회의 제8대 회장으로 취임하며 연임 중인 그는 파독 광부 기념탑 건립 조성 사업, 의료비·생계비 지원법 추진 등에 전심전력을 다하고, 연로한 회원들의 복지 향상에도 정성을 쏟아왔다.
그 일환으로 김 회장은 1963년 12월21일과 27일 비행기에 오른 ‘제1차 1진 선발대’ 247명 가운데 국내 파독연합회에 등록된 회원들을 초청하고 2022년 11월11일 ‘기록 보존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생존회원 9명 중 이날 행사 참석자는 5명이었으며, 4명은 부산과 창원의 양로원에 입원해 있어 집행부가 직접 내려가 감사패와 행운의 열쇠를 전달하고, 존경을 표했다. 김춘동 회장은 “가장 보람되고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노래를 통해 파독근로자를 알리고자 2015년 ‘그뤽아우프 합창단’을 결성한 장본인이다. 파독 광부·간호사 30명으로 이뤄진 합창단은 매년 10월 남해 옥토버페스트에 초대되어 아름다운 합창을 선보이고 있다.
김 회장은 “파독근로자의 ‘의료비·생계비 법률 개정안’을 임기 중에 통과시키는 것이 마지막 소명”이라며 “가족과 조국을 위해 희생한 파독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이제 70~80대 노인들이 됐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이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됐음을 후세대가 기억해주길 바람”했다.
이 땅을 위해 청춘을 바친 그들의 삶은 ‘한국의 자랑스러운 역사였다’고 이제 우리가 대답할 차례다. 그 시작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법률 개정안’이 하루빨리 의결하는 데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사)한국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연합회 김춘동 회장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주역인 ‘파독 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의 위상강화와 복지향상에 헌신하고, 실질적인 지원 정책 마련 및 법·제도 개정 공론화를 이끌면서, 파독근로자 기념사업 추진과 자긍심 고취 선도에 기여한 공로로 ‘2024 대한민국 사회공헌 대상(시사투데이 주최·주관)’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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