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투데이 이윤지 기자] ‘꽃과 함께한 60여 년 외길 인생’, 서울 양재동에서 동성농원을 운영 중인 이동범 대표는 우리나라 화훼 역사의 산증인이다.
1965년 고려대학교 농과대학 온실에서 연구보조원 생활을 하며 화훼업계에 첫발을 내딛었던 그는 오늘날까지 품종 육성, 시설 도입, 재배기술 개발, 판매·유통 등 화훼산업 전반을 선도해왔다.
이 대표는 “4년간 대학 내 온실에서 최신 원예기술을 체화했고, 수백 종에 달하는 식물의 학명을 모두 암기해 주위를 놀라게 했으며, 밤마다 외국 서적과 전문 책자를 탐독하는 등 화훼 전반의 관리를 도맡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18세 때인 1969년 서초동 꽃마을에 ‘동성농원’을 열었다. 당시 재래식 꽃 재배에 머물렀던 시장에서 신품종과 신기술을 도입하자 순풍에 돛을 달고 승승장구했다. 사업 밑천이 되어 준 부친의 ‘소 판 돈’ 35만원을 그 해에 갚고 가족 모두가 상경했으며, 3백 평에서 시작했던 화훼 농장은 2천 평까지 늘어났다.
특히 이 대표는 ‘어떻게 하면 낙후된 화훼산업을 현대화할 수 있을까?’ 골몰하다 ▲서초동 꽃마을의 반지붕식 온실 구조를 3/4식 온실 시설로 변경하며 통풍·일조량 증대 ▲보온솜(캐시미론)을 개발해 동절기 보온성 향상 ▲작물의 재배력 증진과 병해충 예방을 위한 인공용토 개발 ▲수공예 토기로 제작되던 화분 대신 ‘비닐 포트’ 제작 등 혁신을 일으켰다. 그러나 공유재라는 생각에 단 한건의 실용신안이나 특허등록도 하지 않았다.
이런 그는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고 주경야독하며 학구열을 불태웠다. 고졸 검정고시를 거쳐 1985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 제1회 졸업 후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원에서 원예학을 전공하며 석사학위까지 취득했다. “15살 어린 나이에 연구보조원을 하다 꿈에 그리던 학교에 대학원생이 되어 돌아오니 벅찬 감정을 느꼈다”고 전한다.
그리고 88서울올림픽 때 이 대표의 선구안은 방점을 찍었다. 1980년 올림픽 개최지가 서울로 확정되자 2년간 주경기장, 공원, 성화봉송로 꽃길조성에 적합한 품종을 선발해 연구했으며 왜성칸나(American Red Cross)와 대륜 잉카메리골드(Orange, Yellow) 두 품종을 선발·증식·보급했다. 그 결과 전 세계에 중계되는 한국은 형형색색 아름다운 꽃으로 물들었고 체육부 장관으로부터 88서울올림픽 참여에 대한 공로로 올림픽기장 수훈을 받았다.
국내 화훼산업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 만큼 그에게는 유독 ‘최초’, ‘유일’의 수식어가 많이 따라붙는다. 1991년 양재동 꽃시장 개장에 앞서 시설 자문을 지내고, 개장과 동시에 한국유통연합회를 설립해 초대회장을 역임했으며, 2016년 한국화훼유통연합회를 협동조합법인으로 전환했다. 나아가 한국화훼유통연합협동조합 초대이사장을 맡아 ‘꽃 소비 생활화 운동’을 역점사업으로 추진함이 일례다.
이처럼 사명감 하나로 화훼산업의 외길을 걸어왔던 이동범 대표가 지난 연말 ‘2023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 화훼분야 반열에 오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은 농촌진흥청이 식량작물, 채소, 과수, 화훼·특용작물, 축산 등 5개 분야에서 1명씩 선발·시상하고 있다. 즉, 해당분야의 뛰어난 기술력으로 농업·농촌 발전을 선도한 농업인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이 대표는 “60여 년을 화훼인으로 살아오면서 쌓아온 기술, 경륜, 노하우를 화훼농가와 후학들에게 재능기부 하는 것이 명인에게 주어진 사명이라 생각한다”며 “일반 시민을 위한 무료 화훼교실 개설, 초·중·고와 연계하여 학교현장에서 직접 식물을 가꾸는 현장학습, 반려식물 생활화 인식 고취에 역할을 담당하고 싶다”고 바람했다.
이어 “내가 꽃을 피었지만 실은 꽃이 나의 인생을 이끌어주었다”고 소회하며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꽃들을 다루고 생활하면서, 꽃의 향들이 몸에 녹아 전 세계 하나 밖에 없는 혈액형, 피에도 꽃이 흐르는 ‘RH마이너스 F(Flower)’으로 바뀌었다”는 이 대표를 보며 ‘천상 화훼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동성농원 이동범 대표는 화훼류 재배·생산기술 개발(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과 보급을 통한 화훼산업 발전에 헌신하고, 화훼 유통시스템 개선 및 생산자·소비자·유통인의 상생 환경 조성을 도모하면서, 꽃 소비문화 정착과 공동 판매조직 확충 선도에 기여한 공로로 ‘2024 올해의 신한국인 대상(시사투데이 주최·주관)’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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