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투데이 이선아 기자] 참혹한 현실을 향해 '인간의 조건'을 묻는다…연극 '파묻힌 아이'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그들의 시간은 짐승의 시간이었다."
연극 '파묻힌 아이'가 27일 오후 8시 경기아트센터 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근친상간과 친족살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저지르고 수십 년 동안 진실을 은폐해온 한 가족의 이야기다.
미국의 유명 배우이자 극작가인 샘 셰퍼드의 작품 'BURIED CHILD(파묻힌 아이)'를 원작으로 한다. 1979년 최고의 문학상인 퓰리처상 드라마부문을 수상한 작품이다.
정식 라이선스 계약을 한 경기도극단은 한태숙 예술감독의 연출을 통해 시청각적 장치와 표현, 괴이한 시선이 가득한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아들과 어머니의 충동적 관계에서 태어난 인정할 수 없는 아이의 탄생, 집안의 가장 '닷지'는 아이를 죽여 뒷마당에 매장한다. 아이를 파묻은 땅은 황폐해졌고, 오랜 시간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손자라며 집을 찾아온 '빈스'와 그의 연인 셸리에 의해 진실이 드러나면서 위태롭게 살아오던 가족들의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인간임을 포기한 사회의 짐승 같은 단면도, 눈 감아버리고 싶은 참혹한 현실을 향해 '파묻힌 아이' 속 가족은 '인간의 조건'에 대해 묻는다.
닷지 역 손병호 배우를 중심으로 예수정(핼리 역), 윤재웅(틸든 역), 정다운(브래들리 역), 황성연(빈스 역), 정지영(셸리 역), 한범희(듀이스 역)는 무책임한 인물들과 그들의 야만적인 시간 뒤에 남은 저주받은 인생을 표현한다.
개막을 며칠 앞두고 경기아트센터에서 만난 한태숙 감독과 배우들의 표정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코로나19로 역경을 겪고 1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기에 더욱 그랬다.
한 감독은 파격적인 내용을 담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 이 시대에, 가족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 어떤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동시대성을 생각하며 어떤 면을 전할지 배우들과 열과 성을 다해 표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 극단에서 표현하기에 관객이 느낄 거부감이 염려됐다. 하지만 연극은 위안과 재미뿐 아니라 우리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 대한 비평적인 시각이 있더라도 극단에 변화를 위해, 해보지 않은 새로운 작품이 계속 올려졌으면 한다"라고도 했다.
어둡고 무거운 내용인 데다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서사를 함께 고민한 것은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손병호 배우는 "이 집안의 역사를 안은 닷지 역할을 맡고 나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에 초점을 두고 고민했다. 남편·가장으로서 어떻게 책임질지, 세월은 지나가고 쌓인 것은 먼지·외로움·고독·병마밖에 없는 '닷지'의 삶에 대해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이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정다운 배우는 "충격적인 일을 다루는 작품이지만,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담은 작품이기 때문에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했던 것 같다. 작품을 보신 분들이 한 번쯤 되짚어보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을 얻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예수정 배우는 근친상간과 불륜을 저지르는 장본인이지만 생명력 넘치는 캐릭터인 '핼리' 역할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예 배우는 "처음에 한 감독이 이 작품에 대해 말할 때, '이걸 어떻게 해요'라고 했지만, 작품을 분석하고 연습하면서 핼리의 삶을 들어가 본 뒤 핼리를 좋아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핼리는 일반적인 도덕의 잣대를 떠나 생명체로서 자기 생명의 욕구를 거부하기 싫어하는 존재다. 핼리의 삶을 흠모하면서 작품에 임하고 있다"라고도 했다.
최고의 무대를 위해 베테랑 스태프들도 참여한다. 2021년 이해랑 연극상을 수상한 무대미술가 이태섭을 비롯해 김창기 조명디자인, 지미세르 음악감독, 김우성 의상디자인, 이지형 오브제디자인 등 쟁쟁한 스태프가 손을 보탰다.
한 감독은 "이번 연극에서 무대를 극대화한 예술적 작품을 보여주고 싶었다. 제한된 여건에서 관객이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무대예술과 음향을 느낄 수 있도록 욕심냈다"라며 무대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도덕과 도리를 망각하며 살아온 가족, 진실이 밝혀진 뒤 그들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파묻힌 아이'는 27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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