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기획전시
윤용
| 2012-07-23 17:56:31
[시사투데이 윤용 기자] 국립극장은 공연예술박물관에서 2012 기획전 '창唱 무舞 극劇의 어울림:50년의 기억과 감동'을 오는 7월 24일(화)부터 2013년 2월 28일까지 전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창단 50주년을 맞이하는 국립극장 전속단체인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과 이관단체인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의 공연 자료에 대한 소개뿐만 아니라 네 단체의 주 공연 작품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 영상으로 제공한다. 또 국립창극단의 <적벽>, <Mr. Rabbit and the Dragon King>, <청> 국립무용단의 <코리아 환타지>, <환>, <비어있는 들> 국립발레단의 <지젤>, 국립오페라단의 <투란도트>, <마술피리Q>, <멕베드> 등 화려한 실제 공연의상이 전시되고, 현재 국립극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원 및 무대 스태프들의 50주년을 축하하는 인터뷰 영상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창극과 오페라의 음원 체험, 무대조명 체험, 무용과 발레 동작을 표현하는 거울의 방 체험, 아이패드 조작하여 직접 50년 공연의 역사자료를 선택해 보는 I-Wall 체험 등 다양한 전시 체험이 가능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한편 이번 기획전시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수궁가’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 사진을 찍어 즉시 모바일로 전송해주는 증강현실 포토존 체험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기획전 <창唱 무舞 극劇의 어울림 : 50년의 기억과 감동>은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의 공연 역사를 통해 각 단체의 발전상 및 공연무대 위에서 탄생되는 예술작품을 살펴보고 이의 예술사적 가치를 재인식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다음은 전시개요내용>
<Ⅱ. 전통 음악극의 산실, 국립창극단>
국립창극단은 1962년 ‘창극의 정형화와 국제화’를 목표로 창단되었다. 창단 이후 판소리 5대가의 창극화와 다양한 ‘젊은 창극’ 레퍼토리 개발에 힘써 왔으며, 해외에 창극을 널리 소개하는 역할을 해왔다. 또한 ‘완창 판소리’공연 등으로 전통의 소리를 지킴과 동시에 ‘어린이 창극’ 공연 등을 기획하여 창극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1.국립창극단의 창단과 판소리 중심의 창극 정립 (1962-1969)
1962년 명동의 시공관에서 국립극장이 새롭게 문을 열면서 국립창극단의 전신인 국립국극단이 새롭게 만들어져 창극 제작 단체로 출범하였다. 초대단장에는 김연수, 부단장에는 김소희, 창극단원으로는 그 시대의 명창인 21명(박초월, 강장원 김준섭, 임유앵, 김경애, 김경희, 김득수, 장영찬, 남해성, 박봉선, 박초선, 김정희, 한승교, 한일섭, 안태식)이 있었다. 초창기의 국립창극단은 판소리 다섯마당(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을 중심으로 한 판소리 중심의 창극 작품이 대부분이었고, 고대소설이나 설화를 창극화하는 창작창극도 만들기 시작하였다.
2. 창극의 정본화 작업 (1970-1976)
국립창극단은 판소리와 창극이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창극의 독자적인 형식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창극에 연극적 기법을 받아들이고, 전문적인 제작을 위한 ‘창극정립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창극정립위원회는 판소리 <춘향가>의 각 이본(異本)들을 모아 비교와 대조를 통해 15회 공연 <정립 춘향가>를 무대에 올렸다. 또한 역사적 인물을 창극화하거나 잃어버린 판소리를 창극화하여 창작창극을 만들었다.
3. 연극과 놀이 지향의 창극 (1977-1989)
전통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주체적으로 창극양식의 현대화에 노력하였다. 전통 판소리를 최대한 살리면서 현대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하여 판소리 다섯마당의 ‘완판 창극’이 무대에 올려졌다. 또한 허규와 손진책 등 연출가와 연극인을 중심으로 ‘마당놀이’가 하나의 공연 장르가 되어 창극에 마당극적 요소를 덧붙이면서 발전하였으며, 연극과 전통 연희의 소재를 활용해 창극무대의 양식화로 나아갔다.
4. 창극 양식의 다양성 모색 (1990-1999)
1990년대는 기존의 창극 양식화에 대해 반성을 하면서, 창극 연출에 오페라 전공자, 전통 마당극 전공자, 연극 연출가 등 다양한 연출가들이 활동하게 된다. 그래서 이 시기는 72회 공연 <황진이>의 음악극화 작업이나 73회 공연 <달아달아 밝은 달아>에서 현대음악을 사용하는 등 창극의 대중화를 위한 다양한 실험적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5. 창극의 대중화와 세계화 (2000-현재)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립창극단은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창극의 대중화를 위해 판소리 다섯마당의 창극화 작업을 이어가면서, 창극의 음악극적 성격에 주목하여 창극을 한국적 음악극으로 제작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으며, 보편적 음악극으로서의 국가브랜드공연 <청>과 함께, <시집가는날>, <로미오와 줄리엣> 등 ‘젊은 창극’ 시리즈를 만들어 세대를 아우르는 실험적인 무대도 올리고 있다.
<Ⅲ. 한국 춤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추구하는 국립무용단>
국립무용단은 1962년 한국무용계의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창단되었다. 창단 초기에는 다양한 춤 형태의 공연을 시도하며 한국 무용을 정립하였고, 1973년 국립발레단과 분리되면서 전문 무용단으로서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 춤을 현대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끝에 무용극이라는 양식을 만들어내어 이를 고유한 스타일로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1. 국립무용단의 창단과 한국무용의 정립 (1962-1969)
국립무용단은 1962년 한국 무용과 고전 발레가 함께 존재하는 직업전문무용단으로 시작하였다. 전통 무용의 보호와 육성, 민족발레의 수립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임성남을 초대 단장에, 송범, 김백봉이 부단장을 맡았다. 한국무용의 단원으로는 강선영, 권려성, 김문숙, 조용자, 정인방, 김진걸, 이월영 등이 있었고, 발레의 단원으로는 진수방, 주리, 이인범 등이 있었다. 이 시기의 국립무용단은 국가 소속 무용단으로서 특정 장르에 치우치지 않고, 무용 소품을 발굴하고, 서구적 발레 테크닉을 한국적 정서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등 다양한 공연을 위해 노력하였다.
2. 무용극의 모색과 정착을 위한 노력 (1973-1986)
국립무용단은 1973년 현재의 국립극장이 남산으로 옮겨짐과 동시에 국립무용단과 국립발레단으로 분리되었다. 송범을 단장으로 새롭게 닻을 올린 국립무용단은 한국의 전통 춤을 현대적이고 국제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무용극’이라는 양식을 만들어 냈다. 12회 공연 <별의 전설>, 17회 공연 <원효대사>, 35회 공연 <도미부인>이나 39회 공연 <젊은 날의 초상> 등과 같이 무용극에서 주로 전통 설화나 역사적 인물의 소재를 찾아 추상적 표현이 아닌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3. 춤 예술의 무용극으로 발전 (1987-1995)
이 시기 국립무용단은 기존의 이야기 전달의 무용극이 아닌 춤의 요소나 연출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춤 예술의 무용극을 만들어냈다. 이차돈의 순교를 소재로 한 53회 공연 <하얀 초상>이나 55회 공연 <신(神)>과 같이 줄거리 위주의 무용극에서 벗어나 새로운 창작적 소재와 구성으로 한국적 무용극의 현대적 재창작 노력하여 국립무용단의 고유한 예술적 전통을 만들어 냈다.
4. 한국 무용의 대중화와 세계화
1996년 국립무용단 단장에 취임한 국수호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도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무용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70회 공연 <오셀로>와 같이 외국적 소재를 한국 춤에 차용하고, 한국적 소재를 전문으로 연구하여 춤의 다양화와 레퍼토리화를 추구하였다. 또한 이 시기 ‘무용극’이라는 용어를 ‘춤극’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국수호의 뒤를 이어 김현자, 배정혜와 같은 예술감독은 작품 창작에 제한을 두지 않고 다양한 움직임, 음악, 무대미술 등의 요소를 작품에 넣어 총체적인 조화를 추구하였다. 한국무용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국립무용단의 고유한 무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Ⅳ. 세계무대로 도약하는 국립발레단>
국립발레단은 1962년 국립무용단에 소속되어 출발하였다. 1973년 국립무용단에서 분리되어 국립발레단으로 재출범하면서 대표적 작품을 전막 초연하고, 창작 현대 발레와 한국적 창작 발레를 제작해 한국 발레의 전문화와 대중화에 기여해왔다. 2000년 재단법인으로 독립하여 예술의 전당 상주단체로 활동하면서 세계무대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1. 국립무용단 시기 한국발레의 정립 (1962-1972)
1962년 국립무용단으로 창단된 국립발레단은 임성남(1962~1992) 단장을 중심으로 진수방, 주리, 이인범 등 국내 최고의 무용수들과 다양한 창작 발레 레퍼토리를 개발하면서 공연활동을 시작했다. 이 시기는 국립무용단의 이름으로 한국무용과 함께 공연하였지만 발레공연에 대한 비중이 높았다.
2. 국립발레단 창단과 한국 발레의 성장 (1973-1992)
국립발레단은 1973년 국립극장 남산 이전?개관과 더불어 국립무용단에서 분리되어 국립극장 전속단체의 하나로 공식적인 창단을 함으로써 더욱 활발한 공연활동을 펼쳤다. 최초의 전문 안무가 영입과 함께 17회 공연 <지젤>, 19회 공연 <코펠리아>, 20회 공연 <백조의 호수> 등을 한국에서 최초 전막 공연을 하여 한국 발레 공연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서 공연예술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커지고 대한민국무용제,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계기로 28회 공연 <처용>, 38회 공연 <배비장>, 47회 공연 <춘향의 사랑> 등 한국적 창작발레 공연의 폭을 넓혀 놓았다.
3. 한국발레의 전문화와 대중화 (1993-1999)
김혜식 단장의 취임(단장 겸 예술감독 체제) 이후 정단원과 연구단원으로 구분하는 서구식 단체운영방식을 발레단 운영에 적용하였다. 1997년 최초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에서 해외공연을 시작하였다. 78회 공연 <까르미나 부라나>, 79회 공연 <해적>, 91회 공연 <바리> 등 한국발레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최태지 단장의 취임으로 국립발레단은 한국 발레 발전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되면서 한국 발레를 해외에 많이 소개하였다.
4. 재단법인 출범 이후 국립발레단 (2000-현재)
2000년 국립발레단은 재단법인으로 독립하였다. 이후 창작발레 제작과 과학적 마케팅으로 미국, 러시아 등 해외공연도 성공을 거두었다. ‘발레이야기’와 ‘찾아가는 국립발레단’을 통해 발레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으며, 세계 최고 안무가들과 활발한 예술 활동을 벌이며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한국 발레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찾아가는 국립발레단 공연 <지젤> 지젤 의상 2008
의상디자인/에뚜왈 작곡/아돌프 아당
청순하고 순박한 시골처녀의 사랑과 배신을 그린 내용으로 클래식 발레에서
가장 유명한 공연 레파토리 중 하나로 사랑받는 작품.
<Ⅴ. 한국 오페라의 발전을 주도하는 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은 1962년 공연 전문성의 확보와 수준 향상을 위하여 창단되었다. 이후 오페라 본고장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꾸준히 소개하는 한편,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품은 창작오페라를 개발하여 예술성과 대중성을 갖춘 수준 높은 오페라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2000년 재단법인으로 독립하여 예술의 전당 상주 단체로 활동하면서 한국 오페라의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1. 국립오페라단의 창단 (1962-1972)
1962년 국립극장 전속단체의 하나로 시작한 국립오페라단은 초대 단장으로 이인범, 부단장으로는 김자경, 간사에 오현명을 두었다. 김학근, 황병덕, 변성엽, 서영모, 안형일, 황영금, 이인영, 김복희, 임만섭, 김옥자, 채리숙 등 당시 성악인 24명의 단원이 있었다. 첫 공연으로는 장일남의 창작오페라 <왕자호동>과 2회 공연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3회 공연 베르디의 <가면무도회>를 한국에서 초연하면서 공연활동을 시작했다.
2. 오페라의 전문화를 위한 노력 (1973-1979)
1973년 남산에 국립극장이 이전?개관하면서 극장의 규모와 시설, 음향 등의 환경이 좋아지고, 오페라 전문 연출가들이 활동을 시작하면서 공연 수준이 크게 높아졌다. 개관기념 공연으로 선보인 15회 공연 베르디의 <아이다>를 시작으로, 1975년 광복 30주년 기념으로 홍연택의 창작오페라 <논개>를 무대에 올리면서 한국 창작오페라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주었다.
3. 오페라의 대중화와 소극장 오페라 (1980-1999)
이 시기에는 오페라를 음악 중심으로 감상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극과 연출의 중요성이 크게 나타냈다. 국립오페라단의 다양한 외국 오페라의 정기공연 이외에도 소극장에서 36회 공연 <초분>, 47회 공연 <이화부부> 등과 같은 오페라의 소재를 변화시키면서 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다양한 창작오페라들이 공연되었다. 이러한 소극장 오페라가 계속 무대에 올려지고, 외국의 유명 오페라가 꾸준히 소개됨으로써 대중들과 가까워지게 되었다.
4. 재단법인 출범 이후 국립오페라단 (2000-현재)
2000년 국립오페라단은 재단법인으로 독립하면서 우리의 문화와 정서를 반영한 창작오페라를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오페라 본고장의 대표적인 작품들도 재해석하여 지속적으로 공연하면서 예술성과 대중성을 갖춘 오페라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마술피리Q> 천사 의상 2009
의상디자인/코너 머피 작곡/모차르트 연출/마이크 애쉬맨
밤의 여왕의 부탁으로 타미노 왕자가 마술피리를 가지고 악당에게 갇힌 파미나 공주를 구하러 가면서 겪게 되는 갖가지 시험과 고초를 그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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