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했던 청년은 어떻게 빚의 벼랑 끝에 서게 됐나 <화제의 신간> 청년파산
박미라 기자
4724014@daum.net | 2026-06-02 10:56:02
[시사투데이 박미라 기자] 10여년간 도산·손해배상 전문으로 일해온 박기태 변호사는 사건을 맡으면서 2020년부터 한가지 변화를 체감한다.
사무실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연령이 점점 어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사업에 실패한 40대, 50대 가장이나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한 노년층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엔 대학을 막 졸업했거나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20대 대학생부터 전세 사기로 전 재산과 대출금을 날린 30대 신혼부부, 취업난 속에서 생활비를 벌어보려고 코인과 주식에 발을 들였다가 벼랑 끝에 선 청년들까지, 빚의 수렁에 빠진 20~30대를 매일 같이 마주하게 된 것이다.
박 변호사는 신간 '청년 파산'에서 2024년 법원통계월보를 기준으로 개인회생 신청자 중 2030 청년 비중이 45%를 상회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빚이 청년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파헤친다.
저자는 상담실에서 직접 목격한 수천건의 실화를 재구성해 평범한 청년들이 어떻게 빚의 감옥에 빠지게 되는지 부채의 구조를 해부하고, 그 속에서 한 청년의 인간관계와 일상, 존엄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준다.
스무살에 서울의 한 사립대학교에 입학한 1995년생 이지훈 씨. 지방 9급 공무원인 아버지가 간신히 기숙사비를 대줬고, 이씨는 용돈을 벌기 위해 4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나 졸업장과 함께 남은 건 학자금·생활비 대출이라는 4천만원의 빚이었다. 졸업 후에도 취업은 바로 되지 않았다. 0.7평 고시원에서 지내며 낮에는 구직 활동을 하고 밤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다. 마침내 2년 만에 한 중소기업에 취업한 그는 이제 성실하게 일하기만 하면 빚을 모두 갚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240만원의 월급에서 학자금 대출 원리금과 고시원 방세, 취업준비생 때 썼던 카드값, 휴대전화 요금 등이 빠져나가고 나면 그의 통장에 남는 돈은 20만원. 그렇게 부족한 생활비를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나 리볼빙으로 메우기 시작하면서 빚은 6천만원으로 늘어났다. 3년 만난 여자친구가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그에게는 사치라고 느껴졌고 결국 이별했다. 그리고 그는 어느 날 한강 다리 위를 세 시간 동안 걸었다. 하지만 억울했다. 성실하게 살아왔기에. 그래서 다시 살 방법을 찾기 위해 다리 위에서 내려왔다.
저자는 "대한민국 청년층이 처한 현실은 단순한 현금 흐름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벌어들이는 소득보다 짊어진 부채의 총량이 훨씬 빠르게 늘어나는 구조, 이른바 구조적 자산 역행이 이 세대 전체를 덮치고 있다. 그리하여 2030 청년층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자산이 줄어들고 있는 세대다"
책은 이 밖에도 무심코 5천원으로 시작한 불법 온라인 도박이 고금리 불법 사금융으로 이어지고, 결국 통장이 막히고 휴대전화가 끊긴 청년이 어떻게 사회적 유령으로 전락해 고립과 은둔으로 향해가는지 보여준다.
또 빚에 짓눌리고 포모(FOMO·소외공포)에 사로잡힌 청년들이 주식 리딩방 사기, 보이스피싱 등 어떻게 사기 범죄의 표적이 되는지도 추적한다.
동시에 대한민국 청년의 빚 증가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상환 능력을 따지지 않은 채 대출을 권유하고 이자 수익을 독식하는 금융기관의 책임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오늘날 청년들이 겪는 빚 문제는 개인의 나약함이나 도덕적 해이로 치부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저출산·저성장·일자리 증발이라는 구조적 재난 속에서 청년들은 출발선에서부터 '마이너스'를 안고 시작한다."
저자는 벼랑 끝에 선 이들에게 개인회생과 파산 면책 제도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숨겨진 가장 강력하고 합법적인 '구명보트'라면서 이 같은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메디치미디어. 3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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