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투데이 윤용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3일 "70년 전 이곳 제주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희생당했다. 이념이란 것을 알지 못해도 도둑 없고, 거지 없고, 대문도 없이 함께 행복할 수 있었던 죄 없는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을 당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제주 4·3평화공원에서 거행된 4·3 사건 70주년 추념식에 참석한 자리에서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중산간 마을을 중심으로 '초토화 작전'이 전개되었다.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며 "중산간 마을의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고, 마을 주민 전체가 학살당한 곳도 있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어 "1947년부터 1954년까지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1, 3만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념이 그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학살터에만 있지 않았다"며 "한꺼번에 가족을 잃고도'폭도의 가족'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통은 연좌제로 대물림되기도 했다. 4.3은 제주의 모든 곳에 서려있는 고통이었지만, 제주는 살아남기 위해 기억을 지워야만 하는 섬이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1960년 4월 27일 관덕정 광장에서 '잊어라, 가만히 있어라' 강요하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 제주의 청년 학생들이 일어섰고,제주의 중고등학생 1천500명이 3.15 부정선거 규탄과 함께 4.3의 진실을 외쳤다"며 "수많은 4·3 단체들이 기억의 바깥에 있던 4·3을 끊임없이 불러냈다. 4·3을 기억하는 일이 금기였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불온시되었던 시절 4·3의 고통을 작품에 새겨넣어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준 분들도 있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유신독재의 정점이던 1978년 발표한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 삼촌', 김석범 작가의 '까마귀의 죽음'과 '화산도',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 3년간 50편의 '4·3연작'을 완성했던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4.3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조성봉 감독의 '레드헌트',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임흥순 감독의 '비념'과 김동만 감독의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고(故)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는 세월', 가수 안치환의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 일일이 작품들을 언급했다.
또 "때로는 체포와 투옥으로 이어졌던 예술인들의 노력은 4·3이 단지 과거의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임을 알려주었다. 드디어 우리는 4·3의 진실을 기억하고 드러내는 일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길을 열어가는 과정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제주도민과 함께 오래도록 4.3의 아픔을 기억하고 알려준 분들이 있었기에 4.3은 깨어났다"면서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국가폭력에 따른 무고한 희생"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승리가 진실로 가는 길을 열었다"며 "2000년, 김대중 정부는 4.3진상규명특별법을 제정하고, 4.3위원회를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4.3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위령제에 참석해 희생자와 유족, 제주도민께 사과했다"며 "저는 오늘 그 토대 위에서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더 이상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고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다. 유해 발굴 사업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끝까지 계속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유족과 생존·희생자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배·보상과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 등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의하겠다"면서 "4·3의 완전한 해결이야말로 제주도민과 국민 모두가 바라는 화해와 통합, 평화와 인권의 확고한 밑받침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제주는 그 모든 아픔을 딛고 평화와 생명의 땅으로 부활하고 있다"며 "우리는 오늘 4·3 영령들 앞에서 평화와 상생은 이념이 아닌 오직 진실 위에서만 바로 설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좌우의 극렬한 대립이 참혹한 역사의 비극을 낳았지만 4·3 희생자와 제주도민은 이념이 만든 불신과 증오를 뛰어 넘어섰다"면서 "고 오창기님은 4.3 당시 군경에게 총상을 입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 3기’로 자원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다"며 "아내와 부모, 장모와 처제를 모두 잃었던 고 김태생님은 애국의 혈서를 쓰고 군대에 지원했다. 4.3에서 '빨갱이'로 몰렸던 청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을 지켰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념은 단지 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에 불과했다. 제주도민들은 화해와 용서로 이념이 만든 비극을 이겨냈다"며 "제주 하귀리에는 호국영령비와 4·3희생자 위령비를 한자리에 모아 위령단을 만들었다. '모두 희생자이기에 모두 용서한다는 뜻'으로 비를 세웠다. 2013년에는 가장 갈등이 컸던 4.3유족회와 제주경우회가 조건 없는 화해를 선언했다"면서 "제주도민이 시작한 화해의 손길은 이제 전 국민의 것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아직도 낡은 이념의 굴절된 눈으로 4ㆍ3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제 우리는 아픈 역사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불행한 역사를 직시하는 것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만 필요한 일이 아니다"라며 "우리 스스로도 4.3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낡은 이념에 틀에 생각을 가두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이제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보수와 정의로운 진보가 '정의'로 경쟁해야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며 "공정한 보수와 공정한 진보가 '공정'으로 평가받는 시대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정의롭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면, 보수든 진보든, 어떤 깃발이든 국민을 위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4.3의 진상규명은 지역을 넘어 불행한 과거를 반성하고 인류의 보편 가치를 되찾는 일"이라면서 "4·3의 명예회복은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으로 나가는 우리의 미래"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제주는 깊은 상흔 속에서도 지난 70년간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외쳐왔다"며 "이제 그 가치는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으로 이어지고, 인류 전체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로 전해질 것"이라며 "항구적인 평화와 인권을 향한 4·3의 열망은 결코 잠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대통령인 제게 주어진 역사적인 책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오늘의 추념식이 4.3영령들과 희생자들에게 위안이 되고, 우리 국민들에겐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이 되길 기원한다"고 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역대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행방불명인 표석 및 위패봉안실에 방문했으며 문 대통령은 행방불명인 표석에 동백꽃을 올리고, 위패봉안실에서는 술 한 잔을 올림으로써 유족을 위로하고 4.3 영령을 추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 추념식 최초로 대통령과 대통령부인이 함께 헌화 및 분향을 진행, 김정숙 여사는 4.3을 상징하는 동백꽃을 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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