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투데이 윤용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1일 "여러분과 함께 한 가지 기억을 떠올려보는 것으로 연설을 시작하겠다"며 "정확히 20년 전. 그것은 어느 날 불쑥 날아든 해고통지였고, 가장의 실직이었으며, 구조조정과 실업의 공포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회에서 '2018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제출 국회시정연설'을 통해 "IMF 외환위기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그때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큰 충격을 줬다. 경제적 충격만이 아니라 심리적·정서적 충격이 국민의 삶 전체를 뒤흔들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어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경제는 매우 건실해졌다"면서도 "그 후유증은 국민들의 삶을 바꾸어버렸다. 저성장과 실업이 구조화되었고, 중산층이라는 자부심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또 "과로는 실직의 공포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었다"며 "무한경쟁사회에서 나를 지켜주는 것은 상식과 원칙이 아니더라는 생각도 커져갔다.한번 실패하면 재기할 기회조차 갖기 어려운 구조에서 양보와 타협, 연대와 배려는 특별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촛불집회에 대해 "세월호 광장과 촛불집회는 지난 세월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한꺼번에 드러낸 공론의 장이었다"며 "그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개인의 힘만으로는 고단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고발이었고, 삶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선언이었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촛불혁명은 민주주의의 회복을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의 미래를 밝힌 이정표였다"며 "국가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라다운 나라를 찾아나서는 과정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개혁정책과 관련해 '사람중심 경제'를 설득하는 데에 연설의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문 대통령은 "새 정부가 표방하는 '사람중심 경제'는 결코 수사가 아니다. 절박한 현실인식에서 출발했다"며 "재벌 대기업 중심 경제는 빠르게 우리를 빈곤으로부터 일으켜 세웠지만 정체된 성장과 고단한 국민의 삶이 증명하듯이 더 이상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사람중심 경제'는 경제성장의 과실이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경제"라며 "일자리와 늘어난 가계소득이 내수를 이끌어 성장하고, 모든 사람과 모든 기업이 공정한 기회와 규칙 속에서 경쟁하는 경제"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회개혁정책에 대해 "국가권력기관의 개혁은 사회적 신뢰 회복을 위한 선결과제"라며 국정원의 국내정치 절연, 해외·대북 정보 전담 등 구조개편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법제화 등에 대한 국회 협조를 당부했다.
또 최근 논란이 된 공공기관 채용비리와 관련해서도 "공공기관이 기회의 공정성을 무너뜨리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공공기관의 전반적 채용비리 실태를 철저히 규명해 부정행위자는 물론 청탁자에게도 엄중한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국가기관과 공공부문, 나아가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불공정이 국민 삶을 억압하는 일이 없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더는 반칙·특권이 용인되지 않는 나라로 정의롭게 혁신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안보 문제와 관련해 한반도 비핵화를 기반으로 한 평화 원칙도 제시했다. ▲한반도 평화 정착 ▲한반도 비핵화 ▲남북문제의 주도적 해결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북 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 등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는 안전하고 평화로워야 한다"면서 "이는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책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더 나아가 "우리가 이루려는 것은 한반도 평화"라며 "따라서 어떠한 경우에도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은 안 됩니다.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의 사전 동의 없는 군사적 행동은 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한반도에서의 어떠한 군사행동도 불가하다는 의지를 재천명 한 것이다.
특히 전술핵 배치를 위해 두 차례 방미한 자유한국당을 겨냥한 듯 "남북이 공동 선언한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따라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는 용납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다"며 "우리도 핵을 개발하거나 보유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또한 "제재와 압박은 북한을 바른 선택과 대화의 장으로 이끌기 위한 수단입니다. 우리 정부의 원칙에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도 인식을 함께하고 있다"라며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하고, 이를 위해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국제사회와도 적극 공조하겠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내년도 예산안 총지출은 429조원이다. 올해보다 7.1% 증가한 수준으로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라며 "경제와 민생을 살리기 위해 재정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도 예산안과 세제 개편안은 일자리, 가계소득 증대, 혁신성장, 국민안전과 안보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일자리 예산이 대폭 늘어났다. "올해보다 2조1000억원 증가한 19조2000억원"이라며 민생현장 공무원 3만명 확충을 비롯해 민간부문에서도 중소기업이 청년 정규직 채용을 할 경우 세제지원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과 벤처창업으로 새로운 성장기반과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혁신성장 예산도중점 반영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융합기술 개발을 위해 1조5000억원을 투자한다. 특히 중소기업간 공동연구 지원을 확대하고, 스마트 공장 지원 등 지능정보화에 주력한다.
문 대통령은 "성장동력을 찾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혁신창업에 많은 지원이 이뤄지도록 했다"며 "추경을 통해 8000억원을 추가 출자한 중소기업지원펀드에 이어 내년에는 투융자 복합 금융지원을 확대하고, 재도전 성공패키지 지원대상을 늘리겠다"고 말했다.
이외 사내창업프로그램 지원을 새로 도입하고, 민관합동 창업지원, 사회적기업 창업지원도 대폭 확대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사업화〃창업으로 연결시키는 핵심기반으로 한국형 창작활동공간을 75곳 설치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재정건전성 유지에도 만전을 기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불요불급한 예산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11조5000억원의 지출을 줄였고, 5조5000억원의 추가 세수가 확보되도록 세법개정안도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예산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정부의 정책방향이며,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라며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국정과제와 지난 대선의 공통공약, 안보 문제에 대해서 대승적 차원에서 국회의 적극적인 이해와 협조를 특별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가처분 소득 증가 예산안과 관련해, 주거·교육 급여 인상을 통한 기초생활보장 급여 현실화, 재난적 의료비 지원대상을 모든 질환으로 확대, 치매국가책임제 시설 확충, 아동수당, 장애인·기초연금과 참전·무공수당 인상, 독립유공자 후손 생활비 지원 등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소득 주도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세법 개정에 대해선 "초고소득자의 소득세율과 과표 2000억원 이상 초대기업의 법인세율을 인상하는 세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며 "서민·중산층,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지원을 보다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환경 분야 예산에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국가 책임 실현, 재방 방지를 위한 안전관리 예산을 반영했다. 국방예산에선 "2009년 이후 최고 수준인 6.9%를 증액했다"며 방위력 개선 예산 확대를 비롯 병사 봉급을 2배 인상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의 필요성과 관련 "개헌은 국민의 뜻을 받드는 일"이라며 "변화한 시대에 맞게 국민의 기본권을 확대하고 지방분권과 자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개헌은 내용에 있어서도, 과정에 있어서도 국민의 참여와 의사가 반영되는 국민개헌이어야 한다. 국민주권을 보장하고 정치를 개혁하는 개헌이어야 한다"며 "저는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 시기를 놓친다면 국민들이 개헌에 뜻을 모으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울러 "국회에서 일정을 헤아려 개헌을 논의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 개헌과 함께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선거제도의 개편도 여야 합의로 이뤄지기를 희망한다"며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으로 새로운 국가의 틀이 완성되길 기대하며 정부도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또 "안보와 민생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며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의 운영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우리는 지금,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 국민들에게 성실하게 대답해야 한다. 나라답고 정의로운 국가를 돌려드리겠다고 대답해야 한다"며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분야에서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그동안 모든 책임을 스스로 짊어져야 했던 국민들께 이제는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고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들이 사회적 대타협을 이룬 것을 높게 평가하며 "지금도 국민들은 정치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내 삶을 바꾸는 정치를 요구하며 스스로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 우리 정치권이 국민의의지를 받들어 실천할 때다. 우리 정치가 뒤처지지 않고 협력하여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대통령은 "오늘은 그리스에서 출발한 성화가 도착하는 날"이라며 "100일 앞으로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의 성공은 국가적 과제"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상식과 정의가 나를 지켜줄 수 있는 나라, 양보와 타협,연대와 배려가 미덕이 되는 나라,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위해 국회가 함께해 줄 것"이라며 "국민의 희망이 반드시 국회에서 피어나길 바라마지 않는다. 국회와 의원님들께서 관심을 갖고 함께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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