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노인복지 이대로 괜찮은가?
폭염이 연이어 계속되던 무더운 어느 날 종묘공원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로 가득 찼다. 여기저기 즐비한 술병들과 공원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쾌쾌한 냄새,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할아버지들까지.. 하지만 7년 전 종묘공원은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였으며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들의 휴식처이자 놀이터였다. 한 여름 기자가 찾은 종묘공원의 모습은 더위와 함께 자유를 갈망하는 노인들의 입김이 포개져 그야말로 복잡함 뒤에 가려진 쓸쓸함을 보는 듯 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인공원으로는 종로 3가에 있는 탑골공원, 4가에 있는 종묘공원 그리고 장충단공원이 있다. 탑골공원은 성역화 되기 전까지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이 모이는 휴식처였으며 그보다 조금 여유가 있는 노인들이 찾는 곳은 종묘공원 그리고 장충단공원은 어떤 색깔도 없이 노인들이 한 둘 모이다 이제는 꽤 많은 노인들이 찾고 있는 공원이다.
탑골공원이 성역화 되기 전에는 하루 보통 3천명의 노인들이 탑골공원을 드나들었다. 그러다 종로구 경운동에 서울노인복지센터가 생기면서 일부는 이곳으로 그리고 일부는 탑골공원, 또 일부는 종묘공원으로 분산되다보니 종묘공원이 탑골공원을 제치고 이제는 대표적인 노인전용 공원으로 이름이 거명되게 되었다.
노인들의 쉼터, 왜 종묘공원이어야 하나?
행정구역인 서울 종로구 훈정동 90번지 종묘공원 광장. 먼동이 밝아오는 오전 6시부터 노인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면서 오전 10시에는 약 2천 명 정도의 노인들로 가득 차며 그 주변은 실버벨트를 이룬다.
공원벤치와 주변의 빈 공간에는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장기를 두거나 잡담을 나눈다. 이렇게 노인들이 새벽부터 종묘공원 찾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사단법인 사랑채’에서 무료로 배식하는 점심티켓을 얻기 위해서다. 이는 선착순으로 배급이 되며 한정된 인원인 400명만이 티켓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새벽부터 모여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배식은 11시 20분부터 12시 40분까지 진행되며 ‘사랑채’ 직원들의 도움으로 식판에 음식을 담아 먹는 형태의 배식이었다. 하지만 이마저 먹지 못하는 노인들은 하루 종일 주린 배를 움츠리고 여기저기 술판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종묘공원으로 모여드는 노인들의 거주지는 다양하다. 수원, 인천, 안양, 평택 등 지하철로 이동할 수 있는 위치에 거주지가 있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모여드는 곳이 종묘공원이다. 이곳에 오는 노인들의 대부분은 특별히 할 일도 없고 자식들 눈치도 보여 거의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는데 노인들의 슬픈 자화상이라고까지 표현하는 이들도 있을 만큼 활기차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근처에 각종 프로그램 운영으로 노인들의 삶을 활기차게 보낼 수 있는 서울노인복지센터가 건재하고 있는 데도 공원을 찾던 사람들은 여전히 공원을 선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묘공원 입구에서 노점을 하시는 한 아저씨는 “7년 전까지만 해도 종묘공원은 연인들의 필수적인 데이트 코스였죠. 노인들은 주로 탑골공원에 모였으니까요. 하지만 탑골공원이 노인들의 출입시간을 제한하고부터는 종묘공원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죠. 그것이 게기가 되어 7년이 지난 현재 이곳은 노인들의 천국이 돼 버린 거죠”라며 공원에서 장사한지 10년째란 말도 빼놓지 않았다.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체 인구의 7.9%인 377만 명으로 이미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는가 하면 2019년에는 전체인구의 14.4%로 고령사회를 예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프랑스가 고령사회로 진입하는데 115년이 걸린 것에 비해 우리나라의 19년은 초단시간이며 이는 그만큼 우리에게 고령화에 따른 준비시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종묘공원에서 8년째 커피노점을 운영 중인 한 아주머니는 “낮에는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북적거려요. 정부의 대책도 노인들 스스로의 대책도 없어 보여요. 하루라도 빨리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몇 년 후 이곳은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에 이를지도 모르겠어요”라며 현재 종묘공원의 실태에 한숨을 지었다.
밤, 낮 없이 행해지는 폭력행위
종묘공원 내에서 이루어지는 술 취한 노숙자들의 폭력행위에 대해 알아보던 기자는 한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현 실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기자에게 먼저 다가온 할아버지는 “힘의 논리로 인해 모든 노인들이 꼼짝 못하고 있는 실정이에요. 종묘공원을 장악하고 있는 30~40대 노숙자 한명이 있는데 그 사람이 엊그제 80대 노인을 폭행해 많이 다쳤어요. 주위사람들은 똑같이 두들겨 맞을까봐, 보복이 두려워서 신고를 못하고 있지요”라며 “나라에서 방범초소 하나만이라도 설치를 해주면 우리같이 힘없고 약한 노약자나 부녀자들이 그나마 걸어 다닐 수는 있지 않겠어요?”하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현재 종묘공원에는 관리사무소 하나만이 있을 뿐 방범초소 하나 없어, 어두워진 시간에 일어나는 폭행사건에 대해서는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용기를 내어 경찰에 신고한들, 다음날이 되면 어김없이 공원 내를 멀쩡하게 활보하는 그들을 보면서 노인들은 또다시 공포 속에 사로잡힌다.
종묘공원은 구역구분이 확연하다. 북서쪽 솔숲광장은 ‘바둑ㆍ장기파’들의 구역으로 장기판과 바둑판의 대여료는 하루 천원이다. 근처 기원을 운영하시는 한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그마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시계탑이 있는 동쪽 숲길은 ‘유흥파’들이 둥지를 트는 곳이다. 이곳은 그야말로 술 때문에 찾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술판들이 즐비했다.
폭력의 원인은 여기서부터 발달된다. 술에 취한 몇몇 노인들과 젊은 노숙자들 간에 시비가 붙게 되면 경찰이 출동해도 소란만 잠시 재울뿐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건전한 노인문화가 정착되기 위해 정부에서는 하루빨리 종묘공원을 비롯한 일대의 공원들을 관리ㆍ보수해야 할 것이다.
제2의 성역화 공원이 될 것인가?
종묘공원 광장에는 40대 중반에서 50대 후반의 속칭 박카스 아줌마들이 줄잡아 30여명이 되는데 ‘박카스 아줌마’란 박카스를 한 병씩 팔면서 노인들에게 은밀하게 성매매를 제안하는 중년여성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돈 꽤나 있어 보이는 노인들에게 다가가 ‘연애’를 제안하며 ‘봉사료’를 요구한다. 그들이 말하는 ‘봉사료’에는 등급이 있어 적게는 5천원에서 많게는 4만원의 돈을 요구한다고 한다.
기자가 취재 중 우연히 목격한 현장에서 한 아주머니가 “영감님, 날도 더운데 저쪽 가서 시원한 거라도 마십시다”라며 기자 옆에 서있던 말끔한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다. 할아버지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됐습니다.”하며 정중하게 거절하는 분이 있는가하면 승낙하여 따라가는 경우도 있다.
박카스 아줌마는 10여 년 전 탑골공원으로부터 파생되어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박카스 아줌마들은 IMF시절 급격히 증가했다가 잠시 잠잠한 듯 했으나 최근 다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고 있다. 그렇다면 한동안 사라진듯했던 노인 성매매가 다시 판을 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경제적인 이유를 들 수 있다. 경기가 조금 풀렸다고는 하지만 서민경제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 대부분의 국민들이 공감하는 얘기다. 따라서 노인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해서라도 생계를 이어가려는 생계형 박카스 아줌마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두 번째는 갈수록 증가하는 황혼이혼이다.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 이혼하는 사람들이 증가함에 따라 독거노인의 수도 날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아이들을 품안에서 떠나보내고 오랫동안 살을 맞대고 살던 배우자와 헤어진 노인들은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리게 된다. 마지막으로 평균수명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노인들은 말 그대로 노인이 아니다. ‘환갑부터 시작’이란 말도 있듯이 체력이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팔팔한 ‘청춘노인’들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이처럼 노인들의 성욕이 박카스 아줌마 등을 통한 노인 성매매의 증가를 불러왔다는 말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수원에서 올라온 한 노인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데 사실상 노인들이 설 자리는 없어요”라며 “노인들을 너무 홀대하는 사회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노인문화가 퇴폐적인 것은 아니다. 공원에 나오는 대분의 노인들은 건전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친구들을 사귀고 있었다.
한 노인은 “대다수의 노인들은 장기나 바둑을 두면서 건전한 시간을 보내요. 성매매는 하는 사람만 하게 되어 있어요”라며 공원 이면의 모습에 대해 혀를 찼다. 중요한 것은 노년층의 성욕구해소 문제가 더 이상 쉬쉬해야하는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인들의 성매매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낳는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십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 필요
저녁 6시를 넘기면 종묘공원도 완연한 파장 분위기다. 장기판을 기웃거리던 노인들, 약주한잔에 어깨들 덩실 되던 노인들도 시간이 지나고 날이 어두워지면 대부분 지하철역으로 발길을 돌린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이들은 어김없이 공원으로 나와 어제와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마지막 남은 열정을 불태울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노인의 날(10월 2일)에 맞춰 ‘노인복지종합대책’을 내놓은바있다. 그 주요 내용에는 경로연금 대상연령을 65세로 낮추며 노인시설 요양비에 대한 소득공제를 해주고 간병비는 국고로 지원하는 방안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지원이 노인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단편적인 지원보다 더 많은 노인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방안일 것이다.
-민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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