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댓글 파워…인터넷을 점령한 그들
얼마 전 탤런트 여배우가 네티즌들을 상대로 경찰에 고소한 일이 있었다. ‘재벌 2세와의 결혼설’ ‘임신설’과 관련된 악의적 댓글과 괴소문이 겉잡을 수 없이 인터넷과 사람들의 입을 통해 확대되면서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입장에 따라 네티즌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처벌해 달라며 경찰에 고소한 것이다.
‘악플’보다 심한 것이 ‘무플’이라는 말이 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댓글이 자신의 ‘글발’ ‘말발’의 영향력으로 대변하는 지표로 인식된 지 오래다. 댓글이 마케팅의 수단으로도 이용되는 등 댓글 문화는 갈수록 다양화 되어 굵직굵직한 사회적인 이슈를 캐내는가 하면, 숨겨진 사건·사고를 세상 밖으로 공론화시키는 등 댓글의 영향력은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다. 따라서 언론의 기사나 네티즌들이 작성한 글에 댓글이 없을 경우에는 ‘읽을거리가 아닌’ 것으로 낙인 받기 쉽다.
심지어 네티즌들은 직접 기사를 평가하기도 한다. 기사에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기도 하고 이의를 달기도 한다. 때로는 ‘낚았다’라는 표현을 써가며 ‘기사거리도 안되는 것을 기자는 왜 쓰고 있나’ ‘본인 기사에 댓글이 단 것을 보고 싶어 썼나보다’라고 쓴 댓글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댓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 댓글의 막강한 파워, 사회 전반에 드러나
댓글에 대한 영향력이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되면서 기존의 뉴스 중심이었던 댓글은 그 형태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지식, 정보성 댓글로의 변화가 그것이다. 네이버의 지식검색은 하루 평균 약 400만 명이 이용하는 것으로 집계되었고 현재 지식검색에 달린 댓글 수만 해도 백과사전 267권에 해당하는 양을 자랑한다. 최근에는 ‘댓글 마케팅’이라 불리는 댓글의 새로운 모습도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는 상품 홍보에 댓글을 활용하는 것으로 특히 인터넷 쇼핑몰에서 그 의존도는 상당하다.
댓글의 다양한 트렌드 변화는 댓글을 올리는 매체의 다양화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인터넷 취업포털 커리어(www.career.co.kr)가 대학생 1,133명(남 556명, 여 557명)을 대상으로 약 2주간 대학생들의 댓글 활동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가졌다. 그 결과 ‘인터넷 기사나 글, 사진 등의 게시물을 보고 댓글을 단 적 있습니까?’ 질문에 80.1%가 ‘있다’고 응답했다. ‘게시물보다 댓글에 더 관심을 가진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때때로 그렇다’와 ‘매우 그렇다’가 74.3%와 15%를 차지했다. 또한 ‘댓글을 주로 달기 위해 참여하는 공간’에 대해 포털 사이트가 50.3%, 커뮤니티(카페)가 25.9%, 개인 홈페이지 19.7%, 신문사 홈페이지가 4.1%로 나타났다. 기존에 뉴스 서비스에만 국한했던 댓글 문화는 커뮤니티, 개인 홈페이지 등외 다양한 매체로 전이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네티즌들은 “인터넷의 모든 경로에서 댓글은 익숙하게 볼 수 있다. 댓글 없는 공간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정도”라고 말한다. ‘어떤 게시물의 댓글이 가장 관심이 갑니까?’라는 질문에는 연예인 30.3%, 사회 24.4%, 취업 17.6%, 정치 12.3% 등 관심 영역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듯, 대학생들은 댓글에 참여하거나 다른 사람의 댓글을 유심히 본다는 비중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인터넷 게시판 이용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글쓰기 문화를 총칭하는 댓글은 사이버 공간을 통해 각종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인터넷 게시판이 활성화되면서 나타났다. 포털 사이트 관계자는 “뉴스서비스가 시작되면서 댓글도 생겨났다. 현재까지 그 영향력은 꾸준히 높아져왔고, 비중이 더욱 강화되는 추세다”고 말한다.
☞ 여기서 잠깐!
인터넷 인구 3300만 시대. 세상의 모든 소식은 인터넷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과언이 아닐 정도다. 여기에 막강 파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댓글 문화를 주도해 나가는 ‘댓글족’이다. 뉴스보다 더 뉴스 같고 기자보다 더 날카로운 눈을 가진 이들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들여다보았다.
#무한폭격기족
이들을 누가 막을쏘냐. 뉴스서비스, 개인홈페이지, 블로그, 카페 등 장소 불문, 댓글을 무차별 폭격하는 적극성을 띈다. 단순히 정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댓글로 달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는 이들은 날마다 새로운 아이디로 무장, 댓글 문화를 선두에서 이끈다.
무한폭격기족은 종횡무진 활약이 대단하다. 아침에 컴퓨터를 키는 일로 시작해 자신이 활동하는 주 무대에서 여러 가지 스타일로 댓글을 점령한다. 뉴스서비스에서는 ‘이게 말이 됩니까∼’로 시작하는 사회 비판형 댓글을, 개인홈페이지는 ‘뽀샵 제대로 했어요’ ‘무플 방지입니다요’등 애교형 댓글을, 카페에서는 ‘그게 사실인가요?’ ‘정보 좀 꼭 주세요’등 정보형 댓글로 카멜레온 변신을 한다.
#헛소문족
댓글로 인해 일파만파 퍼져가는 소문의 근원은 이들을 일단 의심해보면 좋다. 하나의 이슈에 대해 꼬리의 꼬리를 무는 추측들은 헛소문족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 이들의 활약은 특히 ‘연예면’ 기사에서 발휘된다.
‘제가 아는 분이 성형외과 의사인데요. *** 여기서 얼마 전에 성형했대요’로 시작, ‘이 커플 깨진지 오래 됐어요’등 연예인에 대한 사사로운 말들이 오고간다.
헛소문족들의 특징은 댓글의 막강한 영향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하나의 댓글이 시작되면 댓글의 댓글이 이어지면서 전래동화처럼 작자미상인 이야기가 넘쳐난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고 하지만 인신공격성 발언은 건전한 댓글 문화를 위해 자제함이 어떨는지.
#실속파족
댓글 하나하나가 실속파들에게는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알찬 정보다. 특히 한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지식인’ 서비스에서는 어떤 키워드를 쳐도 댓글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의견이 자유롭게 오고간다.
특히 인터넷 쇼핑몰은 실속파들의 활약상을 눈에 띄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상품을 실제 매장에서 본 적이 없는 만큼 댓글족의 활발한 구매 후기는 실속파들에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 ‘제가 이 화장품 얼마 전에 구매했는데요. 촉촉하고 좋아요. 향기도 좋구요’ 등으로 시작, ‘전자사전 다 거기서 거기지만 이 상품은 정말 별로네요’ 등 솔직한 의견이 오고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전파’가 벼의 뉘처럼 끼어있어 이들을 골라내는 혜안은 필수다.
댓글이 여론의 장이 됨은 물론, 정보의 장으로까지 톡톡한 몫을 발휘하는 것은 실속파들의 종횡무진 활약 덕분이다.
#애걸복걸족
악플보다 무플이 더 무섭다는 것은 이미 댓글 문화에서 상식이 됐다. 무플은 자신이 작성한 글이나 올린 사진 등에 아무런 댓글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 차라리 매서운 매가 낫지 철저한 무관심은 댓글족에게 더할 나위없는 상처다.
이러한 무시무시한 무플로부터 탈출하려는 몸부림은 애걸복걸족에게 한 수 배워야 할 듯하다. ‘무플 금지’로 간단명료하게 설득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댓글 달면 김태희’, ‘댓글 다는 사람 복 받으실 거예요’ 등 애교형이 대다수다. 그 외에도 ‘댓글 하나만 달아주세요’ ‘급해요 제발요’ 등 애걸복걸하는 모습도 다양하다.
#눈팅족
키보드가 부서져라 댓글을 다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한편에서는 남들이 단 댓글을 보며 히죽히죽, 어머어머, 정말이야를 연발하는 눈팅족도 있다. 댓글 문화를 주도해나가는 댓글족이라고 무조건 적극적일 수만은 없는 일. 눈팅족은 마우스를 연신 움직여가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눈으로만 보는 데 여념이 없다.
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인터넷 실명제. 아이디로 무장해도 댓글 하나 조심스럽게 달지 못하는 눈팅족에게 이름을 걸고 댓글을 달라는 것은 극약 처방이다.
무플 방지를 애원하는 애걸복걸족에게 가장 큰 적수는 바로 눈팅족. 제발 하나만 댓글 달아달라는 이들의 사정은 나 몰라라, 그저 스크롤바의 압박에도 꿋꿋하게 본연의 임무만 완성하는 눈팅족의 저력은 대단하다.
■ 네티즌 e-클린 문화 절실
반면 부정적인 기능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이 지적되고 있다. 네티즌들 대부분이 댓글을 달 때 실명이 아닌 닉네임을 사용하다보니 확인되지 않는 사실을 유포 한다던가 악의적인 댓글을 서슴없이 단다는 것이다. 결국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이 무성하게 될 수밖에 없고 또 다른 이들은 이를 사실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때문에 누군가가 인터넷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 얼굴 한 번 보지도 못한 이들에 의해 짓밟히는 것은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위의 소개했던 잘 알려진 한 여 배우의 사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이러한 댓글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대학생 김모씨는 누군가가 모 포털사이트에 그의 과거에 대한 악성 내용을 적고 김씨의 홈페이지 주소를 올려놓았다. 김씨는 홈페이지를 통해 이어지는 악성 댓글로 시달리다가 끝내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정신적인 충격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일부 연예인에만 국한되는 것으로만 여겨졌던 악성 댓글이 최근 일반인에게까지 확산돼 무차별 공격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설문조사 결과에서 보더라도 ‘익명으로 댓글을 달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말투나 내용이 달라집니까?’라는 질문에 54.5%가 ‘그렇다’라고 응답하여 그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댓글이 일부 소수에 의해 조장된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른바 ‘수퍼 댓글족’이라 불리는 이들은 댓글을 대량으로 쏟아내 여론을 왜곡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은 아예 ‘욕설의 쓰레기장’으로 추락하기도 한다. 인신공격으로 가득한 댓글을 보면 한숨부터 나오기 일쑤다.
지난 6월 5일 인터넷실명제법안 공청회에서 주발제를 맡은 왕상한 서강대 법학과 교수는 현재 인터넷의 사이버 폭력이 묵과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현재 인터넷에는 악취가 진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악취가 나는 글을 올리는 사람들과 그것을 방치하는 운영자들, 그리고 사회에 이렇게 악취가 진동을 하는데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의 인터넷을 ‘악취가 진동하는 곳’으로 묘사한 왕상한 교수가 제시한 해법은 보다 더 강력한 형태의 ‘실명제법’이었다. 그는 이상배 의원이 마련한 실명제법안에서 ‘정부산하기관, 신문사, 방송사, 정당, 포털사이트’로 설정하고 있는 적용대상 범위에 대해 “실명인증 의무를 일정범위로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상에서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라면, 무조건 의무적으로 실명제를 적용해야한다는 것이 왕상한 교수의 주장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인터넷 공간에서의 아이디(별명) 사용도 제한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회에서는 이러한 무실명으로 일어나는 댓글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NHN은 뉴스 기사에서 1인당 하루 10개까지만 댓글을 달 수 있도록 제한했으며 ‘악플러’식별 장치도 추가했다. 야후코리아는 지난해 자동 모니터링툴 기능을 개선해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정한 금칙어를 자동으로 필터링할 수 있게 했다. 엠파스도 엠파스 건전 댓글 캠페인을 벌였고 싸이월드는 1인 1아이디, 실명가입 정책으로 악성 댓글 퇴치에 나섰다.
사람의 품격은 입에서 나온다. 입 ‘구(口)’자 세 개가 모이면 다름 아닌 ‘품(品)’자가 된다. 품위(品位) 있고 품격(品格) 있는 사람이 되려면 단 한마디 말에서도 독특한 향취가 풍겨 나와야 한다. 대화는 설득이 아니고 상대방의 말을 듣는 거다.
일본 영화 ‘스윙걸스’는 젊은이들의 유쾌한 재즈 영화다. 영화 대사 중 가장 험한 말이 “쟤들이 저렇게 보여도 나쁜 애들은 아니야. 생각이 없어서 그렇지” 정도다. 우리는 신(神)이 선물한 사랑을 들이 쉰 다음 다른 사람에게 전해줘야 한다. 친절하고 진정으로 남을 배려하는 언어 속에 밝은 미래가 깃들어있다.
댓글 문화 또한 이제 피할 수 없는 21세기 하나의 코드가 되었다. 새로운 인터넷 문화로 자리 잡은 댓글이 상대방이 보이지 않는다고, 닉네임 사용으로 인해 자신이 가려진다고 판단하여 일어나는 그릇된 행동으로 부정적인 요소로 취급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잘 쓰면 약, 잘 못쓰면 독이 되는 댓글. 이용자들의 e-클린 정신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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