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국세에서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99년 이후 5년만에 처음으로 18%를 넘어서는 등 1인당 국민부담금(세금+사회보장기여금)이 400만원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특히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1인당 국민부담금이 435만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돼 서민들의 세 부담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4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지난해 휘발유·경유·등유·중유·부탄·프로판 등 유류에 부과된 교통세, 특별소비세, 교육세, 주행세, 관세 등 유류세는 21조4571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전체 국세 세입액의 18.2%에 달하는 것으로 99년 21.0% 이후 최고치다.
유류세 세수는 2000년 16조1749억원(17.4%), 2001년 16조4149억원(17.1%), 2002년 18조5005억원(17.8%), 2003년 20조532억원(17.5%) 등 해마다 늘고 있다.
석유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국내 석유 소비량은 1.4% 감소했다”며 “국세 대비 유류세 비율이 상승한 것은 에너지세 개편으로 경유 등에 대한 세금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원화 가치 절상과 종량세 세율 체계로 고유가 부담이 크게 상쇄되고 있다며 유류세를 조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 한사람이 납부한 국민부담금 역시 398만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는 세금(340만원)과 사회보장기여금(95만원)을 합친 부담금이 435만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1인당 국민부담금은 2000년 290만원, 2001년 316만원, 2002년 351만원, 2003년 383만원 등으로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사회 복지 강화라는 측면에서 국민부담금이 늘어나는 것은 선진국으로 가는 정상적인 추세로 볼 수 있지만 국민부담금의 증가 속도가 소득을 앞지르는 것은 국민의 부담감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1월 배럴당 37.97달러로 시작한 국제유가는 2월 39.91달러, 3월 45.85달러, 4월 47.21달러, 5월 45.51달러, 6월 51.06달러, 7월 52.84달러로 매월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8월 들어서는 55.87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휘발유 가격도 매월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류세 인하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정치권이다. 한나라당이 서민부담 경감논리를 내세워 교통세 등 유류세의 10% 인하를 주장하고 나선 것.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소속 안경률 의원(한나라당)은 8월 16일 “국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현행 유류세를 50% 내리는 장기계획을 추진해야 한다”며 “일단 유류세 10%를 인하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으며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류세는 교통·교육·주행세 등으로 구성
현재의 유류세는 법령에서 정해진 교통세와 교통세의 15%인 교육세, 24%인 주행세, 부가가치세로 구성돼 있다. 8월 9일 현재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각각 리터당 1449.2원, 1149.5원인데 이중 유류세는 870.21원(60%), 549.59원(47.8%)에 달했다.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유류세를 10% 인하할 경우 휘발유·경유값은 1362원, 1095원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정부는 세수 감소와 석유소비 증가 등을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이다.
사실 지금의 유류세는 정부의 안정적인 세수확보 차원에서 증가했다고 볼 수 있다. 원래 유류세는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1993년 12월까지만 하더라도 휘발유와 경유에 붙는 세금은 특별소비세로, 기름값에 따라 변동하는 ‘종가제’였다. 각각 가격의 109%, 9%가 세금으로 매겨졌다. 덕택에 휘발유값은 싼 편이었다. 10%의 부가가치세를 더한 가격을 보면 1990년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373원이었고 1992년에는 477원이었다.
그런데 1993년 12월 31일을 기해 교통세로 전환되면서 세율은 각각 150%, 20%로 늘어났다. 이후 1995년 12월 종가제가 종량제로 변경되면서 세금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종량제란 가격이 아니라 기름의 양에 고정된 세금을 붙이는 방식으로 당시 정부는 기름 가격의 변동에 따라 세수 확보에 차질이 생기자 이와 같은 방식을 도입했다. 세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종량제의 장점이다.
문제는 당시 정부가 종량제로 전환하면서 종가제로 매길 수 있는 최대 세율을 바탕으로 기본세액을 정했다는 점이다. 기본세율의 30% 내외에서 세율을 변경할 수 있는 상황에서 최대세율(각각 195%, 26%)을 적용해 345원, 48원을 기본세액으로 정한 것이다. 덕택에 1996년 1월의 휘발유 가격은 624원이었는데, 이중 세금은 부가가치세 약 57원을 포함해 401원이었다.
1996년 7월부터는 자동차와는 별 관계가 없는 교통세가 신설됐다. 교통세의 15%인 교육세가 부과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듬해 1월 휘발유값은 리터당 828원으로 증가했다. 유류세가 급증한 것은 1998년의 일이다. 그해 1월 통과된 교통세법에 따르면 기본세액은 리터당 휘발유 455원, 경유 85원으로 늘어났다.
개정이유는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의 자금지원과 관련, 경제의 안정과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에 소요되는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불과 8개월 뒤인 1998년 9월 정부는 다시 한번 교통세법을 개정했다. 교통세 기본세액은 휘발유 691원, 경유 160원으로 늘어났다. 역시 이유는 “실업대책에 소요되는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1년 사이에 각각 346원, 112원이 늘어난 셈이다.
이로 인해 1999년 1월의 휘발유값은 평균 1161원으로 급증했다. 2000년 1월에 주행세 20원이 신설돼 부담을 가중시켰다. 주행세는 그 뒤 교통세의 24%로 변경됐다.
처음보다 6배 가량 인상된 셈이다. 교통세법은 2000년 12월 또 개정됐는데 휘발유 교통세 기본세액은 61원 떨어뜨린 반면 경유는 116원을 올렸다. 이후 2003년 12월에도 경유의 기본세액을 128원 올렸다.
-작년 국세에서 유류세 차지 비중 16.5%
이런 과정을 거쳐 1990년 리터당 210원 정도였던 휘발유 유류세는 2005년 8월 9일 870원으로 늘어났다. 덕택에 세수는 2004년 현재 21조원이 훌쩍 넘은 금액이 됐다.
대한석유협회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 16조1749억원이던 유류세 세수는 2004년 21조4571억원으로 늘어났는데, 이 기간 석유소비량은 7억4255만 배럴에서 7억5232만 배럴로 늘어나는데 그쳤다. 2004년 국세 총액에서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6.5%에 달하고 있다.
이렇게 늘어난 유류세는 외국과 비교해도 무척 높은 수준이다. 2005년 6월 현재 휘발유와 경유 유류세는 62.1%, 47%로 OECD국가 평균인 56.4%와 45.9%에 비해 높다. 경제 수준을 감안하면 그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3년 현재 1만2646달러로 OECD국가 평균인 2만4781달러에 비해 절반 정도다.
이와 같은 국민소득을 감안해 우리의 유류세를 100%로 가정하면 OECD국가의 유류세는 휘발유 41.9%, 경유 53.7%에 지나지 않는다.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나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는 셈이다.
-기름값 인하하면 기름 소비가 늘어난다?
이에 대해 유류세 인하를 주장하고 있는 안 의원은 “탈세나 포착 안 되는 부분을 파악해서 균형을 맞춰나가야 하는 것이지 당장 돈 없다고 하면 답이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세입을 살펴보면 이런 주장이 나올 만도 하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의‘2004 회계연도 세입세출 결산 검토보고’ 자료에 따르면 탈세가 가능한 자영업자와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근로소득자 간에 차이가 드러난다.
양 가구의 통계를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자영업자 가구는 근로자가구보다 주택소유비율이나 자동차소유비율은 높거나 약간 낮다. 월평균 소비지출액은 근로자가구보다 100만원 높다. 그러나 세금은 근로자가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4만3742원(44.3%)이었다. 이런 까닭에 위원회는 자영업자에 대한 정확한 세원포착으로 과세기반을 확충해달라고 주문했다.
게다가 국세의 미수납·불납결손액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의 미수납·불납결손액은 2000년 10조5935억원에서 2004년 13조6543억원으로 증가했다. 위원회는 미수납·불납결손 사유 중 99%가 ‘체납자 무재산’인데, 제도를 보완해 이를 확인하라고 요구했다.
기름값을 인하하면 기름 소비가 늘어난다는 점도 정부가 내세우는 ‘인하 불가’ 근거 중 하나다. 하지만 기름값의 변화와 석유 소비량 사이에 연관성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2000년 7억4255만 배럴이던 석유소비량은 유류세가 지속적으로 증가한 4년간 상승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3년에는 7억6294만 배럴로 최고를 차지했고 이듬해에는 7억5232만 배럴로 약간 감소했지만 4년전보다는 늘어난 수치를 보였다. 게다가 기름값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올해 상반기의 경우 석유소비량은 3억8696만 배럴로 지난해 상반기의 3억7717만 배럴보다 늘어났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기름값과 소비량은 관계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뚜렷한 관련성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환경보호와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고유가 정책을 펼치고 있는 정부의 뜻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안 의원은 “이제는 기름값에 관계없이 국민들이 차를 이용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국민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유류세를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이어 “현재 유류세 50%를 인하했을 때 대체재원이 어떻게 되는지, 유류세 인하가 국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를 나름대로 진행하고 있다”며 “유류세 50%를 인하하면 10조원 정도가 세수에서 감소하는데 이를 어디에서 마련할 것인지 긍정적인 방향에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보유세 서민에게 부담 안돼” 박 “보유세 중산층에 많은 부담”
이러한 세금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대통령과 야당당수의 회담에도 세금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표는 7일 회담에서 ‘민생’과 ‘경제’를 한목소리로 강조했지만, 세금 정책과 부동산대책 등 구체적인 현안을 놓고 큰 견해차를 드러냈다.
세금 정책과 관련해 박 대표는 “정부가 씀씀이와 낭비를 줄여야 한다”며 유류세와 소득세·법인세 인하, 엘피지 특별소비세 폐지 등 감세 정책을 강조했다. 박 대표는 “그렇게 하면 7조원 정도의 세수가 줄어든다”며 “국민들이 처분할 수 있는 소득이 생기면 소비가 가능해지고 공장과 기업의 투자여력과 일자리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올해 세수 부족만 해도 4조원인데 박 대표 말대로 7조원을 감세하면 10조원 이상의 예산을 줄여야 한다”며 “한나라당에서 깎을 10조원 예산의 조목을 좀 정해 줬으면 좋겠다”고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도 박 대표는 “정부는 포도송이처럼 미니 신도시를 늘어놓고 있는데, 절대 수요가 원하는 것은 인프라를 갖춘 대형단지”라며 “보유세 인상 또한 서민·중산층에 많은 부담을 준다”고 지적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택지개발 등을 통해 공급을 확대할 것이고, 보유세는 서민주택의 경우 과표 현실화만 하는 것으로 서민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국민연금 문제에 대해서도 시각차를 드러냈다. 박 대표가 “가장 큰 문제는 사각지대”라며 “기초연금제를 받아들이라”고 말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기초연금제를 실시하려면 8조원이 필요한데 그 재원을 계산해 보셨느냐”며 난색을 표했다.
또 노 대통령은 “양극화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심각해진 것으로 참여정부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박 대표는 “국민이 바라는 것은 오로지 경제를 살려달라는 것”이라며 “경제에 전폭적으로 관심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박영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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