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청권 실질 행사…'합의 의무' 없지만 청와대 수용 여부에 인선 향방
[시사투데이 전해원 기자] 조희대 대법원장이 관행을 깨고 대법관 후보를 서면 제청한 데는 청와대와 끝내 합의가 불발된 상황에서 제청권 행사를 더는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공은 청와대로 넘어간 상황이지만 여권에선 '대통령 임명권에 대한 도전'이라며 탄핵까지 거론하는 상황이라 새 대법관 임명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청와대와 사법부는 지난 1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4명을 추천한 뒤로 최종 후보를 놓고 이견을 보여왔다.
청와대는 이재명 정부 첫 대법관이란 상징성을 고려해 여성이고 진보 성향의 김민기 서울고법 고법판사를 1순위로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은 윤성식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우선순위로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윤 부장판사가 무작위 추첨을 거쳐 내란전담재판부 재판장이 되면서 어려워졌다.
김민기 고법판사는 배우자가 현 정부에서 취임한 오영준 헌법재판관이란 점에서 사법부 내부에서 적절치 않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대법원은 또 다른 여성 후보인 박순영 고법판사를 밀었지만 결국 청와대와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이 '제3의 후보'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제청한 건 청와대와 협의를 이어가려는 나름의 의지를 보인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손 부장판사는 원만한 성품으로 이념적 성향이 뚜렷하지 않고, 영남 지역 '향판'에 비서울대 출신이다. 다양성을 고려하면서 제3의 후보를 제시해 청와대와 접점을 찾아보려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그러나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황에서 내달 이흥구 대법관 퇴임마저 다가오자 더 이상 제청을 미루기 어렵단 판단에 결국 '서면 제청' 카드를 꺼내 들었단 것이다.
현재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자리가 5개월 넘게 공석이고 이흥구 대법관마저 퇴임하면 재판부 2명 공석 상황이 발생했다. 조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로 줄곧 신속 재판을 강조해왔는데, 재판 차질이 불가피해진 셈이다. 여기에 김건희 여사의 '3대 의혹' 사건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 상고심 선고 지연도 피할 수 없게 됐다.
헌법상 대법관은 대법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며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법에는 '대통령과 사전 협의를 거쳐 제청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따라서 이번 제청이 법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간 대통령과 협의를 거치는 것이 사실상 관례로 굳어져 있었단 점에서 이례적이다.
이번 제청을 두고 대법원장이 헌법상 부여된 제청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단 반응도 있다.
특히 대법관 증원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향후 새 대법관 22명을 임명할 예정인 만큼, 이번 제청은 향후 대법원 구성 변화에서 청와대와 사법부간 주도권이 어떻게 형성될지 보여줄 가늠자가 될 수 있단 점도 조 대법원장 결단에 영향을 미쳤을 거란 법조계 반응도 나온다.
일단 공은 청와대로 넘어간 상황이다.
만약 청와대가 '대통령 패싱'으로 보고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히면 정면충돌 양상으로 흘러가게 된다.
작년 5월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파기환송 판결 이후 이어져 온 긴장관계 고조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청와대가 사법부와 대치 국면이 장기화하는 게 정치적으로 이롭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일단 국회로 공을 넘기고 국회의 판단을 구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당장 민주당 의원들이 '대통령 임명권에 대한 도전'이라며 탄핵을 거론하며 반발하고 있어서 임명 절차가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조 대법원장의 제청안을 놓고 청와대가 대법원과 협의를 이어나갈 가능성도 있다.
전해원 기자 sisahw@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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