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로서 ‘꿀벌 전문 수의사’의 새로운 길 열어가
이윤지
| 2025-03-07 09:28:45
[시사투데이 이윤지 기자] 돌이켜보면 ‘맨땅에 헤딩’하듯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때문에 ‘국내 최초, 국내 유일’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노라니, 백범 김구 선생이 좌우명으로 삼았던 한시의 한 구절이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눈 밟고 들판 가운데를 걸어갈 적엔, 모름지기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내 발자국이,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씩 뚜벅뚜벅 걷다 보니, 길이 나고 뒤따르는 후배들도 생겼다. 그야말로 ‘꿀벌 수의학의 선구자이자 길잡이’ 역할을 하는 ‘국내 1호 꿀벌 전문 수의사’가 있다. 대전시 중구 ‘꿀벌동물병원’의 정년기 원장(보건학박사)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정 원장은 전남대학교 수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배합사료공장, 동물약품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수의직 공무원으로 선발됐다. 당시만 해도 소나 말을 돌보는 대동물 수의사가 목표였고, 꿀벌 전문 수의사가 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후 1992년 대전보건환경연구원 동물위생시험소에서 병성감정 업무를 수행하며 꿀벌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양봉농가를 다니면서 ‘아픈 꿀벌에게 어떤 약을 쓰는지’ 물었더니 제각각 다른 답이 돌아왔고, ‘꿀벌 질병의 올바른 진단과 치료법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꿀벌 공부를 시작했지만,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았다. 국내에는 꿀벌 수의사도 없고 관련 서적도 전무한 시절이었다. 결국 꿀벌을 직접 키우고 외국서적도 찾아보며,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수년간 주경야독한 끝에 ‘꿀벌의 질병관리와 진단·치료 지침’을 정립했다.
이에 그를 찾는 곳이 많았고, 정년퇴직 후 대학에서 강의도 맡았다. 2013년 8월 ‘수의사 처방제’가 시행되면서 항생제 등의 꿀벌 치료약품도 수의사 처방이 필요해졌다. 그리고 그해 9월에 정년기 원장은 대전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꿀벌 전문 동물병원’을 개원했다.
하지만 양봉농가의 반응은 차가웠다. 수십 년간 이어온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했고, 꿀벌 수의사의 말에 쉽사리 귀를 열지 않았다. 그래도 막상 정 원장이 진단·처방한 대로 해보니 벌을 키우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자연스레 농가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고, 전국에서 방문·상담 및 교육 요청이 쇄도했다.
그러면서 오직 꿀벌만 진료하는 병원으로 개원한 이래 현재까지 ‘꿀벌과 생태계 보호’에 사명감을 갖고 일하며, 양봉농가의 요청을 받으면 전국 어디든 달려간다. 즉 ‘현장에 답이 있다’는 신념 아래 꿀벌 진료는 대부분 왕진으로 이뤄진다. 특히 정 원장은 “꿀벌과 벌통의 상태가 어떤지, 직접 가서 봐야 제대로 진료할 수 있다”면서 ‘문제점을 규명해 꿀벌의 무리(봉군) 전체가 건강해지도록 함’에 중점을 둔다.
또한 그는 꿀벌 진료뿐 아니라 현장교육과 강연 등의 일정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21년 창립해 대한수의사회 축종별 산하단체로 정식 인가를 받은 ‘대한꿀벌수의사회’의 감사로도 활동 중이다. 힘들 법도 한데, 오히려 “양봉농가를 만나 강연할 때면 에너지가 솟는다”고 했다. 여기에 정 원장의 강연은 실제 현장에서 도움이 될 만한 구체적 사례들을 전달해 양봉농가들의 호응이 크다.
나아가 정년기 원장은 양봉산업 발전과 꿀벌수의사 양성에 이바지하며, 30여 년간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결과물로 ‘꿀벌질병학’이란 책도 출간할 계획이다.
정 원장은 “그동안 축적한 경험, 지식, 자료 등을 정리해 ‘꿀벌질병학’이란 책을 내려고 한다”며 “앞으로도 꿀벌 질병의 진료·처방·상담, 현장교육·강연 및 양봉농가 컨설팅, 기술 전수와 후진 양성 등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내 수의과대학의 커리큘럼에 ‘꿀벌 수의학’이 포함되고, 꿀벌 전문 수의사가 더욱 늘어나길 바란다”며 “꿀벌 개체수 감소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정책적·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견해도 덧붙였다.
한편, 꿀벌동물병원 정년기 원장은 ‘국내 1호 꿀벌 전문 수의사’로 꿀벌의 질병 진단과 치료 지침 정립에 헌신하고, 꿀벌 사양관리 및 질병예방 교육을 실시하면서, 양봉농가 소득증대와 꿀벌수의사 양성 선도에 기여한 공로로 ‘2025 대한민국 미래를 여는 인물 대상(시사투데이 주최·주관)’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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