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정신으로 ‘명품 현악기’ 제작에 구슬땀 흘려

이윤지

| 2016-04-29 09:39:53

김종홍 현악기 김종홍 대표

[시사투데이 이윤지 기자]명품악기의 진가는 제작한 순간보다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났을 때 제대로 드러난다. 이에 ‘김종홍 현악기’ 김종홍 대표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좋은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공방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28년간 현악기 제작 장인(匠人)의 길을 걸어온 김 대표는 음악대학에서 첼로를 전공하고 부산시립교향악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그는 촉망받던 첼로리스트에서 현악기 제작자로 변신을 도모하며 33세에 미국 유학을 떠났다.

이후 시카고의 바이올린제작학교(Chicago School of Violine Making)를 졸업하고 현악기제조 마이스터 자격증도 취득했으며, 미국 굴지 악기제조사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고 국내로 돌아왔다.

당시 우리나라는 고도의 현악기제작·수리 실력을 갖춘 마이스터가 드물었고, 고향인 대구에 터를 마련한 김 대표의 명성은 날로 높아졌다. 오로지 구전(口傳)만으로 정상급 연주자부터 대학생, 중고생 등까지 그에게 현악기 제작과 수리를 의뢰하는 이들도 매우 많았다.

이런 김 대표는 2013년 경기도 일산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김종홍 현악기’를 열고, 가업으로 잇겠다는 아들과 함께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명품악기 제작에 묵묵히 정진해왔다.

그에 따르면 숙련된 기술과 오랜 경험을 토대로 재료선택부터 조립·완성까지 매순간 집중하고 온 정성을 쏟아야만 훌륭한 악기가 나올 수 있다. 짧게는 한 달부터 길게는 석 달 이상이 소요될 만큼 현악기 제작은 여러 공정을 거쳐야 하며, 마이스터 손끝의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악기소리가 천차만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대표는 공방에 차곡차곡 쌓인 목재와 혼연일체가 되어 작업 전반을 진행하고, 5년~45년 수령의 원목들을 명품 현악기로 재탄생시킨다. 특히 그가 장인정신으로 한 땀 한 땀 심혈을 기울이며 손수 만든 현악기는 모양이 예쁘고, 외관의 밸런스가 조화로우며, 소리도 정확하다고 정평이 나있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여전히 우리나라가 현악기 제작의 불모지”라며 “체계적인 교육과정이 없을뿐더러 대부분의 제작자들은 악기를 만들기보다 수리로 생계를 유지할 정도”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그는 “유럽의 장인들이 만든 것 못지않게 우수한 품질을 갖췄지만, 국내산 악기라고 낮춰 보는 대중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함”을 주문하며 “천편일률적인 방식이 아니라 독창적 시도로 ‘스트라디바리우스’처럼 후대에까지 물려줄 수 있는 ‘명품 현악기’를 만들어 나갈 것”이란 다짐을 밝혔다.

한편, 김종홍 현악기 김종홍 대표는 30여년 숙련된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현악기 제작·보급·수리·복원에 헌신하고 국내의 악기제작업 경쟁력 제고 및 고객만족 강화 선도에 기여한 공로로 '2016 올해의 신한국인 대상(시사투데이 주최·주관)'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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