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여린 감수성을 노래하는 아티스트 ‘박준혁’
장수진
| 2011-05-24 10:08:07
[시사투데이 장수진 기자] 도시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차갑고 복잡함 그리고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어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일 것이다.특히 서울은 정치, 경제, 행정, 문화, 사람... 많은 것들이 집중되어 있어 그만큼 복잡하고 치열하다.
그런 도시도 한 발치 물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만히 흐르는 개천도 보이고 주택가 골목 담벼락 밑 민들레도 봄을 느끼게 하며 담장 너머에서 퍼지는 라일락 향기는 길 가던 사람의 코를 벌름거리게 한다.
사람이 사는 곳은 거기가 복잡한 도시든 먼 하늘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시골이든 나름의 정서가 바탕을 이룬다. 그런 사람들의 정서를, 여린 감수성을 건드리는 음악을 추구하는 뮤지션이 있다. 도시의 서정성을 노래하는 아티스트 박준혁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음악이 좋아 기타를 치고 곡을 만들면서도 뮤지션이 되겠다고 공부를 등한시하거나 부모님께 객기를 부려보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성실하게 해내는 모범적인 학생이었고 대학에선 경제학을 전공하고 남들처럼 취업준비도 열심히 했다. 다만 그에게 남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한순간도 음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음악은 그에게 생활의 한 부분이었고 일상이었다. 뮤지션이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곡 작업을 한 것은 아니었다. 음악은 그를 정화시켜 주었고 건조한 도시생활을 견디게 해주는 수단이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 아쉬움에 그는 그동안 작업해 놓았던 곡을 담은 데모 테잎을 파스텔뮤직에 보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음반을 만들자는 제안을 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음반작업이 지연되고 취업 후 데뷔앨범을 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연스럽게 직장인 되었고 이후 뮤지션이 됐다.
정식 앨범을 낸 뮤지션이 되었지만 그는 직장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1집 앨범 발매 후 3년 만에 2집 앨범을 낸 지금도 직장인이다. 그렇다고 그가 뮤지션으로써 활동을 게을리 하는 것은 아니다. 곡 작업도 쉬지 않고 꾸준히 하고 공연도 최선을 다해 소화한다.
뮤지션이라는 타이틀과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사는 그는 그저 물 흐르듯 자신을 순리에 맡길 줄 현명함도 갖고 있다.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몰입하기보다 한 발짝 떨어져 관조적으로 바라보고 자신을 컨트롤 한다.
스스로를 잘 알고 자신에게 솔직한 아티스트 박준혁.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스스로에 대해 솔직한 그에게 직접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Q. 아티스트의 이미지보다 상당히 정돈되고 모범생 같은 이미지에 대해
A. 제 이미지가 좀 그렇다. 보시면 다들 그렇게 말씀하신다. 사실 모범생처럼 별다를 거 없이 학교 충실하게 다녔다. 음악은 내 삶에서 한 부분으로 계속 해왔다. 특별하게 음악을 하겠다고 투신을 한 것보다는 삶의 일부로 해온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서 다른 분들께 이중생활자란 표현을 듣기도 하는데 그냥 내 일이니까. 일반 직장인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있고 음악은 음악대로 꾸준히 하고 있다.
Q. 뮤지션이 과외로 레슨을 하는 건 많이 봤는데 직장인이면서 음악 하는 분은 의외인데
A. 난 평범하게 자랐고 또 평범하게 회사에 취직해 직장인이 되었는데 음악인생도 겸하게 됐다. 음악을 삶의 일부로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것 같다.
만약 대학 다닐 때 음반이 일찍 나왔으면 음악이 내 길인가 하고 뮤지션의 길을 가고 취업은 안 했을지도 모르겠다. 취업 후 1집 앨범이 나와 이렇게 겸하게 된 것이다.
Q. 두 가지 일을 병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A. 사실은 잘 못한다. 어느 하나만도 쉽지 않다. 예를 들어 공연을 할 때 원하는 수준까지 퀄리티를 못 만들고 공연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쩔 수 없더라.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그래도 두 가지를 같이 하다 보니 상호 보완되는 점도 있다. 어느 한쪽에 함몰되지 않으니까. 내가 음악의 끈을 놔버렸으면 직장생활도 못 견디고 나왔을지도 모르겠고 음악만 했다면 또 매너리즘에 빠져 이만큼 못했을 것 같다.
Q. 그럼 현재 상황에 만족한다는 건가
A. 글쎄... 나는 양쪽에 다 중도를 지키는 편이다. 성격적으로도 그렇고...어떻게 보면 혼란스러울 때도 있는데 이게 나라고 생각한다. 항상 한 발치 떨어져서 보게 되는데 가령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경쟁이 치열한 세계니까 살아남기 위해 더 자기개발도 더 하고 출세하기 위해 더 그쪽으로 갈 수 밖에 없는데 음악을 하다 보니 삶이 그런 식으로 가는 걸 원치 않는 것 같다.
반대로 음악적인 면에서 보면 예술이란 게 재능에 대해 생각하고 잘 안 되면 회의를 느끼기도 하는데 직장생활을 해서인지 그러기보다 좀 더 편하게 음악을 내 삶으로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하는 것 같다.
Q. 어려서부터 곡을 꾸준히 만들어왔는데 박준혁에게 창작 행위는 어떤 의미인가
A. 음악을 안 하고 있으면 욕구불만에 쌓이게 된다. 나한테는 음악이 생리현상 비슷한 것 같다. 안하고 있으면 생리현상을 해결 못 한 것처럼 불편하다.
내 마음에 정화가 일어나는 건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활동을 안 하면 다른 걸 못한다. 욕구 불만이 쌓이고 이걸 해야 내 정서의 밸런스가 맞는다. 어떤 목적의식을 갖고 한다기보다 안하면 힘드니까 하는것이다.
Q. 본인이 추구하는 음악은 어떤것이고 무엇인가
A. 서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서정성이라는 게 사운드랑은 다른 건데 거친 음악, 유려한 음악 그런 것 보다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이 서정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예민하고 민감하고 연약한 부분 그런 정서적인 부분을 터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음악에 감동을 받고 그런 음악을 하고 싶다. 예를 들면 쇼팽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서정성이나 너바나, 커트 코베인이 각각 음악적으로 다르지만 들었을 때 서정성에서는 동질감을 느낀다.
뜨겁고 타오르지만 뭔가 연약하고 우울한 그런 걸 다 가지고 있는 것 같고 나도 그런 걸 전달하고 싶다. 그런 감수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Q. 1집 앨범과 2집 앨범은 어떤 차이가 있나.
A. 1집 때는 대학생이어서 생각도 많고 책도 많이 읽고 하니까 사변적이고 몽상적이고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2집은 현실에서 부딪히면서 살다보니 현장에서 느끼는 것들이 명료하게 체득이 되고 음악적으로도 명료해진 것 같다.
또 1집을 만들 당시는 대학시절 방학 때 몰입해서 만들어서 앨범이 집중도가 높고 2집은 직장생활 하는 베이스에서 만들다보니 시간도 많이 걸렸고 그래도 통일성은 덜한 것 같다.
그는 스스로를 관찰자이면서 이방인이라고 말한다. 어떤 환경과 상황에 푹 빠지기보다 한 발 물러나 관조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에서 무심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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