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표 블랙코미디…베네치아 호평 속 '무관' 딛고 아카데미 도전

이윤재 기자

sisa_leeyj@naver.com | 2025-09-07 05:44:20

신작 '어쩔수가없다', '해고'라는 보편적 테마에 '웃픈' 상황…"자본주의 풍자극"
색채적 공간·음악 등 견고한 미장센…내년 오스카상에 한국 대표로 출품
영화 '어쩔수가없다' 감독·배우진 제82회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감독과 배우 모습들.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시사투데이 = 이윤재 기자] 제82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해고 당한 실직 가장의 재취업 이야기를 박찬욱 감독 특유의 블랙코미디와 미장센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기대를 모았던 황금사자상 등이 불발되며 아쉽게도 '무관'에 그쳤지만 '해고'라는 보편적인 주제에 기반한 '웃픈'(웃기고 슬픈) 상황과 박 감독의 견고하고 세심한 연출, 배우들의 호연이 뒷받침되며 평단을 사로잡았다.

내년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오스카상) 국제장편영화 부문에 한국 대표로 출품한 '어쩔수가없다'는 이제 미국 오스카상에 도전한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해고된 가장'이라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샀다.

해고된 실직 가장 만수(이병헌 분)가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를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미국 작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THE AX)가 원작이다.

"어쩔 수가 없다"는 명분으로 회사로부터 해고당하는 상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건이다.

특히 최근 인공지능(AI) 등으로 일자리에 대한 위기의식이 커진다는 점에서 '해고된 가장'이라는 소재는 많은 사람과 접점을 이루기 충분했다.

박찬욱 감독도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계속 추진한 이유로 이야기가 가진 보편성을 꼽았다. 이번 영화는 박 감독이 제작을 결심한 지 20년 만에 완성한 작품이다.

박 감독은 지난달 29일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열린 '어쩔수가없다' 공식 기자회견에서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많은 사람이 고용 불안정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다"며 "20년간 이 작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이든 '공감 가는 이야기'라고 반응해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보편적인 소재를 블랙코미디로 풀어내면서 영화적 재미도 잡았다.

만수가 회사 선물을 받은 것을 계기로 실직을 알게 되는 장면, 실직에 따라 만수 가정이 넷플릭스 지출을 줄이겠다는 장면 등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한편, 실직이라는 같은 처지를 겪는 사람들끼리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워 씁쓸함을 자아냈다.

배우들도 '웃픈' 상황을 호연으로 뒷받침했다. 특히 이병헌은 만수가 경쟁자에게 가질 동질감,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냉정함 등 여러 심리가 교차하는 얼굴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어쩔수가없다'는 이처럼 한 장면에서도 여러 감정이 들게 하며 재미와 영화적 깊이를 더하는 한편, 우리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풍자도 놓치지 않았다.

해외 주요 매체도 '어쩔수가없다'의 풍자적인 면모에 주목했다.

스크린 데일리는 "심리적 긴장감과 폭소를 자아내는 장면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며 "실업자의 절망과 자본주의 사회의 불필요한 잔혹함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자 경고"라고 평가했다.

인디와이어는 "박찬욱 감독의 탁월하고 잔혹하고 쓸쓸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자본주의 풍자극"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박 감독 특유의 견고하고도 빈틈없는 미장센은 이번 영화에서도 빛을 발했다.

가을 산, 만수 집 등의 공간에서는 특유의 색채감이 돋보였고, 오버랩(한 장면에 다른 장면이 겹치게 하는 기법)이나 교차편집도 중요하게 활용하며 인물의 심리를 부각했다.

조용필 '고추 잠자리' 등 1980년대 가요부터 클래식 음악까지 다채로운 음악도 극의 정서를 강화했다. 런던 컨템퍼러리 오케스트라와 협업해 녹음을 진행하는 등 음악에도 공을 들였다.

이처럼 촬영, 편집, 사운드 등 거의 모든 요소를 세심하게 연출하며 영화의 완성도를 한 차원 끌어올렸다.

해외 매체 버라이어티는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감독이 현존하는 가장 품위 있는 감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극찬했다.

박 감독은 아름다운 화면에 관해 "우아하고 아름다운 화면에 집착하지 않는다. 제가 원하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라며 "정확하기 위해 철저하게 노력한다면, 결과적으로는 아름답고 우아해진다고 믿는다"고 연출론을 밝혔다.

미국의 영화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에 따르면 7일 현재 '어쩔수가없다'는 23개 리뷰가 올라온 가운데 평점 100점 만점을 기록하고 있다. 콘텐츠 평점 사이트인 메타크리틱에서도 11개 리뷰를 바탕으로 산정한 결과 88점의 높은 점수를 나타냈다.


시사투데이 / 이윤재 기자 sisa_leey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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