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사람이 무섭다
박지혜
news25@sisatoday.co.kr | 2006-07-05 10:32:51
로맨스로 포장된 무모한 사랑의 고백…스토킹도 성폭력이다
사랑은 나보다도 상대방을 더 먼저 배려하고 위하는 마음이다. 그런 면에서 사랑과 집착은 엄연히 그 모습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을 빙자한 집착은 스토킹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곤 하는데 과거 일부 유명 연예인들에게서 이제는 일반인들에게도 확대되어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 게 현실이다.
■ 일반인들도 스토킹 피해자 속출
얼마 전 남성6인조 그룹의 한 멤버가 한 여성으로부터 스토킹을 당한 것은 무려 3년 동안이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주기적으로 나체 사진을 첨부한 메일을 보내는가 하면 급기야 애인 행세까지 했다고 한다. 그만하라는 답변을 보냈다가 팬 사이트에 비방의 글이 쏟아지고 그 뒤로 그는 인터넷에 손을 대기 어려울 만큼 힘들었다고 전했다.
이런 스토킹은 일부 연예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일반인도 개인 경호원을 고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20대 초반의 한 여성은 소개팅에서 만난 남성으로부터 4개월째 스토킹을 당하고 있었다. 여성은 “이 사람이 날 너무 좋아하나보다 하며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이 한 달 정도 지난 후부터 정도가 심해졌다. 새벽에 자기가 술을 먹으면 특히 심하게 전화를 해 무서웠다”며 남성의 집착이 부담스러워 만나기를 거부하자 전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무려 하루에 100여 통에 가까운 전화를 받기도 해서 이제는 전화벨만 울려도 소스라칠 정도라고. 그간 휴대폰을 없애고 회사를 옮기고 이사를 하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지만 심리적 고통만은 피할 수 없어 수면장애로 급기야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었다.
1년째 업무관계로 만난 여자로부터 스토킹에 시달리고 있는 회사원 박씨는 스트레스로 원형 탈모증도 생겼고 아내와는 이혼 위기까지 겪어야 했다.
박씨는 “당신도 아니고 자기라고 해요. 자기야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말하고 전화를 끊으면 메시지를 남기곤 하죠. 처음에는 넥타이를 선물 받았어요.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는 뜬금없이 속옷을 보내더군요. 이상하다 싶어서 여동생이 보냈나 했더니 아니래요.”
사무실로 오는 전화가 하루에 수십여 통. 직원들의 시선이 두렵고 정상적인 업무 자체가 박씨에는 무리였다. 주말에도 집에 늦게 귀가하기가 일쑤다. 혹 어디를 가든 그 여성이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에 자신의 행정을 추적해서 집까지 무슨 피해가 가지 않을까 염려해서였다. 결국 박씨는 한 달에 수백만 원 들어가는 비용을 감수하며 사설 업체의 개인 경호를 받고 있는 상태다.
그 밖에 일반인들이 스토킹을 당하고 있는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10여 년간 끈질긴 구애 공세를 펼친 30대 후반의 여성 학원장 사례, 헤어지자는 여성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때리고 돈을 빼앗은 20대, 특정인을 지목해 그로부터 사랑 받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 수년 동안 전화, 편지, 조사, 미행 등 스토킹 행각을 일삼은 20대 여성까지 다양하다.
한편 스토킹이라는 것이 구애의 목적이 아닌 ‘괴롭힘’으로까지 작용하고 있다. 그녀 또는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원한관계에 의해 특정인을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개인정보를 유출시켜 사회적으로 매장 당하게 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당해보지 않아 그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이지 피해자 본인은 당혹스럽고 세상이 무섭다는 것을 실로 경험하는 꼴이다. 이러한 스토킹은 과거보다 현재 이 시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 스토킹에는 특정한 유형이 없다
스토킹을 한 사람들의 대부분의 심리는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의식은 전혀 없이 그러한 자신의 ‘노력’이 정당할 뿐 아니라 남자다운 것이라 믿고 결국 그런 노력이 성공을 가져온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결국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따위의 경구들을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들의 머리 속에는 상대방 의사에 대한 존중이라든가 자신을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스토커는 사전적으로 영어의 stolen에서 나온 말인데 뜻은 뺏다, 훔치다, 강탈하다 등으로 이것에 사람을 지칭하는 er이 들어가 즉 빼앗는 사람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스토커는 대개 일방적으로 누군가를 짝사랑하여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본인의 생각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시 남모르게 전화 혹은 메시지 등을 남겨 언어협박을 하거나 그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등 다양한 행동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스토커를 정신이상자쯤으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실제 평범한 직장인에서부터 주부, 학생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라 더욱 공포를 자아내고 있다. 또 이들은 본인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행동을 멈추지 못해 문제가 된다.
지난해 말 열린우리당 염동원 의원 주최로 「스토킹 등 대인 공포유발행위 처벌에 관한 특례법」공청회에 참석한 조중신 한국성폭력상담소 열린터 원장은 스토킹 사례를 설명하면서 “스토킹에는 특정한 유형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스토킹은 일반의 상식과는 달리 성별의 관계없이 이성간에 혹은 동성간에 이루어질 수 있으며 그 목적과 동기 또한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그는 “우리들 중 대부분은 스토킹이 구애를 하기 위한 것이나 특정인에게 위해를 가할 목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꼭 그렇지는 않다”면서 “스토킹 유형과 심각성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음은 그가 소개하는 스토킹 사례이다.
▷2년간 끊이지 않는 ‘침묵전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는 ‘침묵전화’에 2년이나 시달린 한 여성. 전화는 끊기 바쁘게 10초 간격으로 걸려왔다. 결국 긴장과 불안감 때문에 도저히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상담소에 연락, 경찰에 협조를 받아 범인을 잡았다. 범인은 다름 아닌 사돈 집안의 인물. 그것도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스토킹 이유는 그저 “장난삼아서”였다.
▷전생의 인연 ‘같이 살자’
기수련을 한다는 사람이 접근하여 전생의 이연으로 같아 살아야 한다면 집 근처에 매일 찾아온다. 가족들이 나서서 따졌지만 전생에도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다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더니 결국 주민등록번호를 알아내고는 일방적으로 혼인신고를 하겠다고 협박했다.
▷교도소에 간 뒤에는 끊이지 않는 편지
집요하게 자신을 스토킹 했던 사람이 교도소에 간 뒤에도 계속해서 편지를 보낸다. 결국 이 사를 갔는데도 새 집 주소로 편지를 보내온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초등학교 때 짝을 대학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어려서부터 좋아했다며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쫓아다닌다. 아버지와 오빠가 나서서 타일러도 막무가내로 쫓아다니다가 어느 날 차에 태워 끌고 가서는 청산가리가 든 주사기기를 들이대며 같이 죽자고 위협했다.
▷친구를 위해 음란 메시지
툇자를 당하고 괴로워하는 치구를 위한다고 그 여대생의 삐삐에 음란하고 저속한 내용의 메시지를 계속 남긴 남학생이 추적되어 학내 여학생회에서 형사처벌 대신 교육수강명령을 받았다.
이외에도 핸드폰 메시지보내기, 끈질기게 선물하기, 5분마다 전화하기 등등 스토킹의 유형은 다양하다. 때때로 스토킹이 로맨스로 포장되기도 한다.
과거 스토킹이라는 어휘조차 한국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의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2003년 말 스토킹이 로맨스로 포장되었던 한 사건이 언론매체를 통해 소개된 적이 있었다.
[한 남자 A가 있다. A는 한 여자를 열렬히 사랑했지만 뜻밖에도 그녀에게 냉정한 이별 통고를 받고 만다. 그녀를 향해 달음질치던 사랑의 관성을 제어하지 못한 A는 그녀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그녀가 언젠가 나타날 그녀의 학교 정문 앞에서 일인 시위를 벌인다.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녀를 향한 A의 공개구애임을 알 수 있게 실명을 공개한 대자보를 온몸에 두르고 하루 종일 기다렸다. A의 이런 당당하고 시끄러운 이별거부 시위는 신문에 전해졌고 인터넷에 두루두루 퍼졌다.]
마침내 A의 ‘가상한’ 노력은 신문지상과 인터넷에 공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거대한 여론몰이가 되어 A의 애정공세에 박수를 보냈다. 아마도 1인 시위를 한 A에게 쏟아진 갈채는 A의 일방적이고도 과격한 사랑의 호소가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엄청난 오해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스토킹’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해석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보라. A의 이러한 모습이 끈질긴 구애공세가 아니라 이미 마음이 떠난 상대가 끊임없이 주변을 맴돌며 강압적으로 관계회복을 요구하는 것, 그것이 다름 아닌 피 말리는 ‘스토킹’과 다를 바 없다.
물론 사건의 당사자인 그 여성이 A의 작태에 분노를 금치 못하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 괴로워하고 있을지 아니면 이렇듯 온 동네에 소문나도록 자신을 사랑할 줄은 몰랐다며 감동했을지는 장담 못한다. 만약 그녀가 여전히 그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의 행위는 엄청난 위협이 되었을 것이고 공개적으로 이별통고를 거부함으로써 엄청난 여론몰이에 성공해 그녀를 압박한 꼴이 된다.
때려서 옆에 두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다. A의 방법은 훨씬 정교하고 조직적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A의 일방적인 애정공세를 문제 삼기보다는 오히려 A를 격려하고 부러워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다. 이런 시선이 당사자에게는 끔찍한 고통일 수 있는 폭력을 ‘사랑’으로 둔갑시키며 계속해서 재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A의 행동과 심리적인 것들이 스토커가 자신이 스토커임을 알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조 원장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가정파탄을 우려해 신고마저도 주저하고 심지어는 바로 자기 때문에 스토커가 자꾸만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까지 겪는다. 여기에 경찰은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기 일쑤고 설사 구류 등 가벼운 처벌이 이루어진다 해도 이를 계기로 ‘잃을 게 없다’는 심정으로 가해자들의 행동이 더욱 과격해져 피해자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 정신적 피해 생각보다 심각
발생 빈도가 낮고 그 피해도 그다지 심각하지 않을 것으로 흔히 여겨지는 스토킹이 실제로는 생각보다 자주 이뤄지며 정신과적 측면을 비롯한 각종 피해 역시 보통 사람들의 이식 수준에 비해 심각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영국에 호주 멜버른대 로즈메리 퍼셀 박사 연구팀이 1천8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432명이 스토킹 피해를 경험했으며 특히 236명은 몇 달 동안 지속적인 시달림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이 조사에서 같은 성별 및 나이의 스토킹 피해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스토킹 피해자들의 정신건강상 문제 발생 비율이 훨씬 높았으며 피해자의 34.1%는 스토킹이 끝난 뒤 1년 뒤에도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피해자의 10%는 스토킹에 시달린 끝에 자살을 고려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영국 정신의학저널에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에서도 스토킹 문제로 주위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서도 심각한 정신과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스토킹 후유증에 대한 인식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스토커에 대응하기 위해 ▲경찰에 알릴 것 ▲스토커와 실랑이를 벌이거나 스토커에게 반응하지 말 것 ▲구체적인 상황과 발생 일시를 문서화할 것 ▲가족과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할 것 ▲개인 안전을 강화할 것 등을 조언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처럼 복잡 다단 미묘 난해한 단어도 없을 것이다. 사랑은 어떤 수위나 깊이를 정해주는 지침이나 교과서가 없어서 연애 초보에게는 지도 없이 도전하는 미로 차기 같이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사랑이고 집착인지도 해석하기 나름이라 관점에 따라서 사랑이 집착이 될 수도 있고 집착이 사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때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토킹은 피해자의 정신을 피폐하고 병들게 만들며 사람에 대한 불신을 심어준다. 따라서 스토킹에 의한 피해를 입고 있다면 당장에 강력한 법적보호를 기대할 수는 없어도 피해내용을 기록해두고 상담소나 경찰, 주변사람들에게 사실을 알려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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