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킬(Road Kill), 야생동물의 새로운 천적

민소진

silver56@sisatoday.co.kr | 2006-06-01 21:37:01

http://www.sisatoday.co.kr 로드킬을 당한 동물들

고속도로 곳곳에 동물 시체, 생태통로 제 기능 못해..

도로 갓길에는 장갑, 신발, 음료수병, 과일 껍질 등이 있다. 그러나 갓길에는 쓰레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버린 물건들 옆에는 바로 몇 분 전까지 인간처럼 붉고 뜨거운 피를 가졌던 하나의 생명이 걸레처럼 나뒹굴고 있다.

그것은 건너편 숲의 옹달샘으로 가고 싶었던 토끼였고, 새끼에게 먹이를 가져다주고 싶었던 수달이었다. ‘인간’이라는 포유동물의 빠른 이동을 위해 고안된 ‘도로’에서 먼지처럼 사라지는 생명들의 종(種)과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그 실상은 밝혀지지 않거나 은폐되고 있으며 도로는 야생의 서식지를 침탈하며 계속 확장되고 있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뻗은 도로는 인간의 이동과 물류유통에 큰 도움을 주지만 야생동물의 통로였던 곳이기에 커다란 문제점도 야기시킨다.

야생동물이 도로에서 차에 치어 죽는 ‘로드 킬(Road Kill)’이 바로 그것. 로드 킬은 도로를 설계할 때 야생동물 이동과 서식영역 등의 생태적 고려를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생태적 영향에 대한 부실한 예측과 적절치 않은 저감대책을 세운 데서 비롯된다.

몇 년 전부터 우리는 국도나 지방도로를 달리다가 곳곳에서 차에 치어 희생된 야생동물들의 시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도로공사의 집계에 따르면 1998년 로드 킬 조사가 처음 시행된 이후 작년 6월까지 전국 23개 고속도로(총연장 2778km)에서 6388마리의 야생동물이 희생됐다.

이는 월 평균 71마리, 하루 평균 2.4마리의 야생동물이 희생당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실제 로드 킬 규모는 한국도로공사의 통계보다 크다. 서울대 환경연구소는 ‘2004년 7월부터 작년 6월까지 지리산권 도로 123km를 조사한 결과 1년 동안 3000마리의 동물이 로드 킬 됐다’고 밝혔다.

해마다 늘어나는 로드 킬

로드 킬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연생태계의 지표종인 양서류와 그 상위 먹이사슬인 파충류가 아무런 대책 없이 희생당한다는 것에 있다. 로드 킬에 의해 희생당하는 야생동물의 종류는 너구리, 고라니, 삵, 하늘다람쥐, 무산쇠족제비 등의 천연기념물부터 양서류, 파충류, 조류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이들 야생돌물의 사체는 대부분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훼손 되거나 같은 장소에서 연이어 발생하는 사례도 있다. 죽은 어미 곁을 지키던 새끼가 곁에 있다가 또다시 차에 치이게 되는 것. 하루빨리 제대로 된 생태통로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멸종위기에 놓인 야생동물마저 씨가 말라 버릴 것이다.

이어 고속도로별 로드 킬 현황을 살펴보면 중앙고속도로에서 유독 많이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백두대간보전회의 김정호 사무처장과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중앙고속도로의 경우 국토의 중앙을 종단하는데다 이 지역이 산악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산줄기의 맥을 자른 사례가 많아 야생동물의 이동통로가 도로 개설로 인해 여타 도로보다 많이 차단되어 있다. 그러므로 다른 고속도로에 비해 로드 킬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일축시켰다.

또한 고속도로뿐만 아니라 일반국도, 지방도 대부분이 지형, 야생동물 서식분포를 고려한 이동통로와 유도펜스가 없어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로에서 로드 킬이 발생하고 있다.

야생동물들의 생태(이동)통로 이대로 괜찮은가?

생태통로는 동물이 늘 다니는 길에 그들이 안심하고 마음 편히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약육강식 세계에서 살아온 야생동물은 조심성이 많고 예민해 주변 환경이 조금만 달라져도 접근을 꺼리는 특성이 있다.

생태통로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김정호사무처장은 생태통로가 생태적이지 않은 것이 문제라며 “현재 건설된 생태통로 대부분이 토목에만 신경을 써 단절된 생태를 연결하는데 부족하다.

예를 들어 이동통로의 구조물 완성 후 주변의 토양과 식생을 고려해 숲으로 복원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일반 정원조경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현 생태통로의 실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생태통로는 일반적으로 ‘육교형’구조로 건설이 되는데 이에 드는 비용이 약 15억 원 안팎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동통로를 만들 시에는 주변지역의 지형, 야생동물의 서식실태, 이동습관 등을 고려하여 가장 적절한 위치를 선정ㆍ건설해야하지만 이러한 기초조사가 부실하다보니 야생동물이 이용하는 빈도수가 낮아 자칫 예산낭비를 불러올 수 있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생태통로는 무엇인가? 이상적인 생태통로는 자연그대로가 가장 좋으나 이동통로 개설이 불가피할 경우 우리나라는 ‘터널형’이 보다 효율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육교형 이동통로가 많은데 이는 대형사슴, 곰 등의 야생동물의 이동을 돕기 위한 제한된 이동통로이며 우리나라와 자연환경이 비슷한 일본의 경우 터널형 이동통로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육교형 이동통로 1개의 설치비용이면 터널형 이동통로 3개를 설치할 수 있어 비용 면에서나 다양한 종(種)의 동물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면에서 더욱 효율적이다. 또한 야생동물을 생태통로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유도펜스도 보다 길게 확보하고 그 주변에도 식생을 접목해 야생동물의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동통로의 CCTV설치와 도로확장에 대한 대책은?

고속도로의 경우 한국도로공사에서 일부 CCTV를 모니터링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데이터가 어떻게 활용되는지는 알 수 없으며 일반도로의 경우 지리산 시암재와 오대산 구룡령에 설치되어 환경부에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동통로를 건설한 뒤 야생동물 이동 모니터링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92개의 이동통로 가운데 백두대간 12곳을 제외하고는 모니터링 장치를 설치한 곳은 한군데도 없으며 이마저도 1년에 한 번 모니터링 할 뿐이다.

한편 CCTV 또한 인공물이기에 외부 자극에 민감한 야생동물에게는 이동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으며 CCTV설치의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이동통로 양쪽에 부드러운 모래로 샌드트랙을 만들어 동물의 발자국을 이용해 야생동물의 종류와 개체수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설악녹색연합 박그림 대표는 “로드킬 방지를 위해서는 로드 킬이 발생하는 위치를 알고 이동통로를 설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어떤 동물이 어디서 많이 죽는지를 알아야 로드 킬을 줄이는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국토면적당 고속도로 연장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6위이지만 오늘도 건설 경기 부양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도로의 확장은 진행 중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도로와 송전선로 등으로 인해 100개 이상의 생태계파편으로 조각나 있다.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의 최태영 연구원은 “도로와 차량은 늘고 있지만 야생동물의 이동통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로드 킬 수와 지점을 파악하는 기초조사를 실시하고 도로의 문제점을 발견해 구조 개선과 이동통로를 설치하고 사후 모니터링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의 경우 기존의 도로로 야생동물이 이동하는데 저해가 된다면 반드시 그에 적합한 이동통로를 만들고 있으며 특히 일본의 경우 산간지역의 대부분의 도로는 다양한 이동통로와 함께 유도펜스가 설치되어 있어 자동차와 야생동물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국 여러 곳에 조성된 생태통로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통합된 생태 네트워크의 틀 속에서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태통로는 서식처를 단순히 연결시켜 주는 차원에서 그쳐서는 안 되며 야생동물의 안전한 이동통로를 확보해 주고 그들의 영역 권을 회복해 줄 때 비로소 생태통로가 제 기능을 하게 된다는 시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먹이연쇄 등 야생동물의 생태적 과정과 기능을 회복시켜 주는 배려도 필요하다. 지방적, 지역적 그리고 국가적 차원에서 생태 네트워크를 구출함으로써 야생동물이 안심하게 서식하고 이동할 수 있는 자연환경을 되찾아 주어야 할 때이다.

-민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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