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희극인 입니다.재미있는 라디오로 세상을 웃기는 남자, '최양락'
이아영
news25@sisatoday.co.kr | 2005-10-06 13:18:53
-“제가 너무 오래 버티고 있나요?”
1981년 개그 콘테스트 대상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25년차 개그맨 최양락.
3분짜리 꽁트로 치자면 만여 편에 달하는 작품을 해왔다는 그는 요즘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진행자로 또 다른 도전에 빠져있다.
-이제 최양락이 웃기면 안 웃겨요
추석특집 7080 코미디쇼를 준비하고 있던 그를 만났다. 근황을 묻자 그는 이제 자신이 특집에나 나오는 사람이 됐다며 세월의 흐름 앞에 연륜이 묻어나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꽤나 바쁜 인사 중 한사람이었다. 영화, 음반, 시트콤에 MC까지 그야말로 일찍이 만능엔터테이너의 길을 걸어왔다. 개그를 제외한 분야 중 어떤 일이 가장 매력적이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제 내가 웃기면 안 웃겨요”라는 난해한 답을 내놓았다.
“라디오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여유를 부릴 수 있어서 좋습니다. 텔레비전의 자극적인 초읽기와는 다르죠. 하지만 모든 맥락은 같습니다. 개그의 다른 표현이죠. 사람들은 제가 웃길 거라는 걸 다 압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영화와 음반도 마찬가집니다. 저는 다만 개그맨 최양락으로 영화를 찍고 노래를 했습니다. 저는 희극인이고 싶습니다.”
그래도 그는 정통 코미디에 대한 열정을 숨기지 못했다. 어느 때보다 공개방송, 객석이 있는 공연의 코미디가 재미있고 신난다는 그의 말이 그의 열정을 대변했다.
-정치인도 못하는 일을 합니다
매일 오후 8시 10분부터 10시까지 그는 꼼짝없이 라디오 스튜디오에 있어야 한다. 그만의 색다른 개그표현 방법으로 라디오 진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는 매일하는 라디오 프로가 부담돼 “비가 와도 나와야 하냐”고 담당자에게 물었다고 한다. 담당자는 “눈이 와도 나와야 한다”고 했고 그 일이 이제 4년차로 접어들었다.
“예전엔 정치인 풍자가 하나의 좋은 개그 아이템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 이젠 누구도 정치를 풍자하는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직접하면 되지 뭘 돌려서 말해요. 하지만 그 정치도 못 풀어주는 국민의 속을 제가 풉니다. 퇴근하는 길에 제 방송을 듣고 하루 피로가 풀린다는 청취자들이 있기 때문에 뿌듯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줄곧 개그맨의 꿈을 키워온 그는 일찌감치 꿈을 이뤘고 성공을 맛봤다. 그러나 다른 연예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푸대접을 받는 개그맨의 위치 때문에 화가 난 적도 있다고 한다.
구색 맞추기식의 구조가 풍토화돼 조미료 취급을 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는 필요한 개그맨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약간의 오기와 계속된 경쟁력이 지금의 그를 만들어 냈다.
-나는 50점짜리 남편입니다
청바지에 깔끔한 흰 남방을 입고 나온 그는 매일 코디를 아내 팽현숙 씨가 해준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바둑과 스포츠에 빠져있는 그를 대신해 아내는 집을 보러 다니고 사업을 한다. 너무 바쁜 아빠를 두었던 탓에 아이들은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하고 아내는 그 일을 거뜬히 해낸다. “저는 50점짜리 남편입니다. 그러나 아내에게는 90점을 주고 싶어요. 모든 일을 거침없이 해내는 아내는 사업가 기질이 있어 보입니다. 결혼 초 신혼의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아 연예인 활동을 반대했는데 이제 하라고 해도 못하죠.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배역도 없고요.”
-단명하지 맙시다
“초등학생인 아들이 몇 년 후에 개그맨이라는 직업이 뭐냐고 물을까 겁이 납니다. 그때까지 우리 아빠가 개그맨이라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게 장르를 깨는 새로운 개그를 연구할 생각입니다.” 회전이 빠르다 못해 따라가기 힘든 요즘 개그맨들의 시류를 말하며 그는 간판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정치도 개그도 잘나서 시작한 사람들인데 그 잘난 사람들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자기 직업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는 MC로서도 웃기고 DJ로 만나도 웃기다.
“혹시 압니까. 몇 년 후에 제가 일기예보나 바둑해설로 웃길 지도 모르죠. 개그맨이기에 가능한 변신입니다.” 그의 말처럼 무궁한 자기계발과 실험정신 앞에 언젠가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그를 만나 허를 찔리는 웃음을 지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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