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 원작 '액스'…평범한 가장이 살인자가 된 이유
박미라 기자
4724014@daum.net | 2025-09-05 08:57:51
[시사투데이 = 박미라 기자] "나는 지금껏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다. 살인을 하거나 누군가의 숨통을 끊어놓은 적이 없다는 얘기다"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원작인 미국 소설 '액스'는 살인을 해 본 일이 없다는 고백을 반복하는 두 문장으로 시작한다.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을 코끼리가 차지하게 되는 것처럼, 살인하지 않았다는 고백은 오히려 피비린내 나는 사건을 예고한다. 특히 첫 문장에 '지금껏'이라는 단서는 '앞으로는 다를 것'이라는 암시로 읽힌다.
버크 데보레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아버지의 유품인 독일산 루거 권총을 꺼내 기름칠을 하고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험한다. 한 번도 총을 쏴 보지 않았던 버크는 남몰래 총알을 사서 사격을 연습한다.
이윽고 준비를 마쳤다고 판단한 버크는 승용차 조수석에 권총을 싣고 목표물인 허버트 콜먼 에벌리가 사는 코네티컷으로 향한다. 아내에겐 펜실베이니아의 공장에 면접을 보러 간다고 둘러댄다.
코네티컷 폴 시티의 중산층 거주지에 도착한 버크는 손쉽게 허버트의 집을 발견한다. 그리고 마침 버크가 목표물로 점찍은 평범한 중년 가장, 그와 똑같은 실업자 신세인 허버트와 마주친다.
1997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액스'는 이 무렵 미국이 누린 큰 호황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한 범죄소설이다. 산업자동화에 의해 경제는 윤택해졌으나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은 피폐한 처지에 내몰렸다.
23년 동안 일하던 제지 회사에서 해고 통지를 받은 버크는 종이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지만, 2년 동안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위기에 몰리자 점점 자신감을 잃어간다.
가정이 무너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버크는 기발한 방법을 떠올린다. 제지회사 관리자를 뽑는다는 가짜 구인 광고를 내서 이력서를 낸 이들 중 자신보다 더 뛰어난 예비 경쟁자들을 추려내 살해하는 것이다.
마치 회사가 구조조정을 위해 버크를 해고하면서 '어쩔 수 없다'고 했던 것처럼, 버크 역시 경쟁자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으며 이렇게 읊조린다.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소설은 버크의 시선에서 현재형으로 서술돼 모든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듯 현장감 있게 다가온다. 여기에 더해 경제 발전의 이면에 인간성을 잃어가는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풍자도 담아냈다.
'액스'는 2011년에 이미 국내에 번역본이 나왔지만, 출판사 오픈하우스는 영화 '어쩔 수가 없다' 개봉에 맞춰 최근 표지를 새로 단장해 개정판을 출간했다.
미국 작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1933∼2008)는 200번도 넘게 고배를 마신 끝에 1954년 미스터리 소설 잡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해 100권 넘는 작품을 펴낸 대중문학의 거장이다. 에드거 상을 세 차례 받고 1993년 전미 미스터리작가협회에서 '그랜드마스터' 칭호를 얻었다.
'액스'는 2005년 그리스 출신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액스, 취업에 관한 안내서'라는 영화로 만들어졌고, 박찬욱 감독의 손에서 '어쩔수가없다'로 재탄생했다. 박 감독은 '액스'의 영화화를 "제 필생의 프로젝트"라고 언급하며 열의를 드러낸 바 있다.
'어쩔수가없다'는 제82회 베네치아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으며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처음 공개돼 해외 주요 매체의 호평을 받았다. 이달 24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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